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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1. 2019

졸린 여름과 마음씨들.

일흔일곱 번째 편지, 공군 서울 공항

To. 콩 아가씨


 조금 오래 미루어둔 글쓰기. 휴가 나가기 전이 마지막이었으니 한 2주 만의 편지로군요. 조금 많이 바빠 지쳤었어요. 물론 그 사이에도 아예 손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지만 글 손을 잠시 쉬어주는 것은 참 달고 편안한 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야깃거리도 참 많아졌고요.


 짧은 듯 짧지 않은 2주. 2주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일단은 5월 18일. 새로운 대통령님을 위한 첫 번째 행사가 있었어요. 당선 후의 첫 번째 비행이라 그런지 평소보다도 더 긴장감이 감도는 행사였던 것 같네요. 이번 행사에도 역시 내가 지원요원으로 나가게 돼서 새벽 4시부터 주기장으로 출근을 했는데, 나름 역사적인 순간에 사용되는 모든 항공기들을 내가 출고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하더랍니다. 행사장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곧 하늘 저 편에서 헬기를 타고 대통령님이 오셔서 2호기에 탑승하셨고, 그렇게 첫 번째 행사가 잘 마무리되었어요.


 그다음 주에는 공군 비행단에서 하는 두 번째로 큰 훈련인 ORE 가 있었어요. 이번 ORE 에는 동체착륙을 했거나 랜딩기어가 파손된 사고 항공기를 구조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장비를 이용해 공중으로 들어 올린 항공기를 앞 뒤로 터그 차 두 대로 동시에 연결해야 하는 고난도의 훈련이었어요. 지상과 완전히 분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비사분이 랜딩 기어의 타이어를 발로 밀었는데, 아무 저항 없이 빙그르르 도는 모습이란! 훈련에 사용된 항공기는 지금은 퇴역한 항공기였는데, 이 친구가 이승만 대통령의 1호기였던 분이라 하시더라고요. 이제 우리 비행단 항공기는 다 토잉 해봐서 새로운 일거리를 접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렇게 재밌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보니 남은 군생활도 지루하진 않겠습니다. 다른 비행단에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요즘은 잠이 조금 늘었어요. 더위 때문에 지쳐서 그런 것인지 훈련 기간에 일이 많아서 피곤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참 졸린 여름인 것 같아요. 누나도 여전히 잠이 많을 텐데, 이 여름은 우리 둘에게 모두 졸린 여름이겠네요. 뭔가 재밌는 일을 찾아보려 하고 있어요. 몸이 지칠 때는 마음이 지치는 일도 좀 쉬어주어야 합니다. 일단은 읽다 지친 책을 그냥 도서관에 반납해버리고 새 책을 빌려왔어요.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는 책인데 여러 거리 음식들이나 간식들에 숨겨진 유래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다룬 책입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라 금세 반 정도를 해치워버렸어요. 세상에나 마시멜로가 나무의 이름이었다니. 콩 아가씨, 마시멜로는 사실 마시멜로라는 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수액으로 만든 먹을거리였대요. 원래 이 나무의 수액에는 소염 작용을 하는 효과가 있어 의학적 용도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변해서 더 이상 마시멜로에 마시멜로 나무 수액이 쓰이지 않지만 참 신기한 이야기였어요.


 오늘도 공부 중일 당신. 콩 아가씨는 쉬고 싶다고 공부를 쉬어주지도 못할 텐데 이 졸린 여름을 잘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전화를 할 때면 그래도 배워가는 내용 중에 재밌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좋으면서도 참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해요. 내게 그런 내용들을 말해주는 것이 행복해 보여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조금이나마 누나의 공부를 함께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집니다. 외출을 나가거나 휴가를 나갔을 때 열심히 모아둔 이야기를 시간에 쫓겨가며 내게 안겨주려는 당신이 오늘 참 보고 싶어 져요. 바로 옆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들으며 볼살에 붙은 잔머리를 넘겨주는 그런 일상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근무가 끝나면 얼른 달려가 전화할게요.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사랑해요.



2017.05.28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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