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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2. 2019

천장의 야광별, 그리고.

여든한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바쁘게 도망가는 삶을 따라가다 보니 또 훌쩍 일주일이 지나버렸어요. 이 일주일 사이에는 참 좋은 일도 있었지만 참 나쁜 일도 많았던 것 같네요. 마음 한편이 답답해지는 소식부터 해볼까. 내가 아주 아끼는 후임 형이 팔씨름을 하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팔씨름하다 팔이 부러졌다는 소리를 처음 들은 것도 아니고 친구 중에도 한 명 그런 친구가 있었지만 내 바로 앞에서 팔이 부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유쾌하지 않은 일이더랍니다. 일그러진 표정과 비틀린 팔, 놀랍도록 컸던 소리. 그날 밤 잠 못 이루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치료와 재활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부디 잘 나아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또 오늘은 내 동기가 외조부상을 당했어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에 친조부상을 당해 청원휴가를 다녀왔었는데, 이 아이는 또다시 당혹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떠난 이의 빈자리로 가벼워진 마음은 제대로 땅을 딛지도 못하죠. 허한 뒷맛에 물 마저 쌉싸름해지는 날이었어요.


 그럼 이제 조금 좋은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달래 볼까요. 이사를 했어요. 이제는 10 생활관. 14 생활관에서 전역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도 참 오래 이곳에 있었구나 싶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첫 밤을 보내는데, 불을 끄자마자 웃음이 나왔어요. 방 천장에 야광별들이 총총 박혀있었거든요. 한 사람 자리만 있던 것도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맡에 붙어있던 별들, 달들. 이곳을 지나쳐갔던 친구들 중에 참 맑은 친구들이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나도 집이 생기면 별이나 좀 붙여둘까 봐요. 좋더라고요.


 요즘에는 공부도 나름 잘 되어가고 있어요. 도서관에 가서 한 무더기 책을 반납하고 다시 한 아름 책을 골라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불안감을 몰래 덜어내고, 한 움큼 쏟아낸 펜의 잉크만큼 그래도 내가 무언가 준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바심을 애써 억누르며 노트를 한 장 한 장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좋은 편지는 어떤 편지일까요. 이야기가 가득 담긴 편지일까요, 생각이 가득한 편지인 것일까요. 마음이 가득한 편지일지도 모르겠어요. 부디 이 편지가 좋은 편지이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글담을 마쳐보겠습니다.


 사랑해요.



2017.07.23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6월의 편지들을 조금 늦게 찾아 편지 업로드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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