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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3. 2019

빠트린 6월의 편지 01.

일흔여덟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6월 9일의 비는 참 반가운 비였어요. 빗소리가 참 듣고 싶었거든요. 비상대기 차량에 앉아 창문을 조금만 열어두고 조용히 책을 읽었어요. 때로는 세차게, 때로는 힘없이. 내리는 비를 곁에 두고 빌려둔 책들을 하나씩 펼쳐 들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흰'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분명 짧은 소설이었는데도 참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지루하다거나 읽기 어려운 문체였다는 것은 아니라, 그저 글이 참 묵직해서, 어떻게 이렇게 먹먹한 글을 멈추지 않고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그랬던 것 같아요. 찬 물기를 흠뻑 빨아들인 솜으로 그려낸 그림 같았달까요. 흰 것들에 대한 감상들로 풀어낸 상처와 아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한 번 정도 추천해봄직한 글이었어요.


 요즘에는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보고 있습니다. 사실 좋아하던, 가고 싶던 기업에 대해 조금 실망한 것도 있었고, 또 새롭게 하고 싶은 일도 좀 생겨버렸으니까요. 고민도 해보고, 생각도 좀 해볼 겸 블로그 운영하던 것을 조금 줄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조인 허리끈을 조금 풀어주려고요.

 



 이 글을 처음 썼던 것이 6월 10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19일입니다. 지난 10일은 참 많이 바빴어요. 대통령님도 왕래가 잦으셨고 야간비행도 평소보다 훨씬 많았네요. 8일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심야 비행이 있어서 퇴근을 못한 날도 많았습니다. 다들 지쳐서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조금 일이 줄어들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이번 주말에는 스페이스 챌린지라고 학생들을 위해 공군이 진행하는 이벤트가 있어 마음 놓고 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나는 목요일부터 블랙이글스를 지원하기로 되어있어 그전까지 컨디션 조절을 신경 쓰려고 합니다. 설레면서도 부담스러운 일. 잘할 수 있겠죠?


 지난 주말에는 영화 인턴을 봤어요. DVD에 조금 스크래치가 있었는지 플레이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정말 재밌는 작품이었어요. 벤처기업의 쾌활하고도 열정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드니로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올드스쿨의 지혜와 여유를 덧댄 솜씨가 일품이더군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앤 해서웨이와 느림의 미학 속에서 확고한 품위를 유지하는 드 니로의 템포. 기분 좋은 휴식이었어요, 내 삶마저 잠시 늦추어 옷매무새를 정돈할 작품이었죠. 묘한 작품이었어요, 한 숨 돌리는 여유를 주면서도 마음 설레게 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영화였어요. 우리 둘이 또 같이 볼까요.



2017.06.10 - 2017.06.19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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