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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4. 2019

구름 구경 그리고.

여든다섯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요 며칠간은 구름 구경이 참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입추가 지나고 부쩍 높아진 하늘에 핀 구름꽃. 소나기가 잦고 티 없이 맑은 날이 없던 지난 며칠간은 매 순간이 새로운 구름에 놀라는 순간들이었어요. 하루는 저 멀리 떠나갈 듯 높았던 구름이 그다음 날은 산등성이를 쓰다듬듯 내려오고. 하얗게 포근해진 구름이 다녀가면 미처 다 씻지 못한 붓으로 매만진 것처럼 탁하고 젖은 구름이 졸졸 뒤를 따르고. 구름 사이 밤이 가득 차면 슬쩍슬쩍 내비치는 별들이, 달이 참 예쁘고. 또 이른 아침 막 이불속에서 일어나 얼굴만 배꼼 내어둔 너처럼 햇살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 또 그게 참 예뻤던 세상. 그래요. 당신이 참 바빴던 동안에 세상은 이렇게 예뻤어요.


 오늘도 나는 밤에도 활주로에 나가 있을 것 같아요. 15일째 연속 초과근무. 이런저런 사정들로 내 동기의 상번이 늦어지고 있어서 비상출동차 운전병 막내는 활주로를 떠날 수가 없네요. 뭐 근무 중에도 책 읽고 공부할 시간은 있지만 조금 마음 편히 쉬고도 싶은데 아직 그럴 여건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마케팅계의 명저인 '포지셔닝'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시리즈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같이 읽고 있어요. 군인이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좋은데 많이 읽으면 많이 읽을수록 조금 답답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좋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당장 뭔가를 하고 싶어 지는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아마도 우리는 조금 쓸쓸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담을 마주하고 그네를 타는 느낌. 높이 올라가면 담 건너편이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네를 멈추고 내려와야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나는 언제나 선택을 유보하고 신중하게 그림을 그려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물론 과감히 움직이려 노력하는 편이고 무엇이든 간에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타입이라 멈추어볼 틈은 많이 없었지만 중요한 선택은 항상 신중하게 내리는 것을 선호해요.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서 내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중이에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내기 위해, 나의 선택만이 아닌 내 주위 많은 이들의 선택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 삶의 고민들을 모아 매만지면 분명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 믿으면서 말이에요.


 지난 주말에는 시계를 샀어요. 가족들이 면회 온 김에 핸드폰으로 주문을 했는데 본 것만큼 예쁜 시계가 왔으면 좋겠네요. 다음에 만날 때는 새 시계를 차고 갈게요. 함께하지 못한 수많은 시간들을 담아서.



2017.08.17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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