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일곱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좋은 점은 역시나 수많은 다른 소리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일 거예요. 목요일에는 참 비가 많이 왔어요. 비상대기 차량에 앉아 듣는 음악 사이로 스미는 빗소리. 나는 그 소리가 정말 좋더라고요. 더없이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그 광경과 음악이, 나는 왜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요.
내일은 시험날이에요. 우리가 참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날이네요. 오늘은 아마 당신도 나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겠죠. 시험시간이 되면 같이 떨게 될 거고, 시험이 끝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함께 손을 잡고 시험장을 나올 거예요. 아주 당연한 그림이지만, 내 곁에 서 있을 당신이 웃고 있을지 울고 있을지 나는 조금 무섭기도 하네요. 함께 살아가는 이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도 상대방을 위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헤쳐나갈 수 없는 무력감과 마음에 사무치는 거리감. 그래요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실패가 아니라 그 실패에 휩쓸려 마음이 닫혀버린 순간일 거예요.
소리 사이에 다가와 세상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그 빗소리처럼,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신의 이야기 곳곳에 살며시 다가와 시린 삶을 껴안아줄 수 있기를. 당신에게 그 작은 틈새가 남아있기를 지금의 나는 바랄 뿐이에요. 물론 웃으며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고, 언제나 나는 내 아리따운 선배님이 잘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울음이 많고 한없이 속이 여린 당신이 있으니까요.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내일의 당신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혹여나 오늘 콩 아가씨 안에 있던 울보가 외출이 고팠다면, 내가 당신의 비가 되어줄게요. 더없이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안아줄게요.
사랑해요.
2017.08.25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