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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5. 2019

사랑스러운 여행자에게.

여든여덟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담고 싶은 말들이 많으면, 담고 싶은 마음들이 많으면 편지는 언제나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면 일단 한 번 꼬옥 끌어안아주고 나서, 오늘 참 예쁘다고 잘 지냈느냐고 물어보면 되고. 또 그 사이에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 따스한 온기를 건네주면 되지만 편지는 소리 없이 건네는 말뭉치들로 당신을 두드려야 하니까요. 편지를 시작하는 일을 투덜거리며 능청스레 시작해본 오늘의 두드림. 꾀돌이의 사랑을 받는 당신은 오늘 행복하신가요.


 놀라운 여행이었어요 정말. 제주도라는 아름다운 여행지 덕도 있겠지만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행복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함께한 여행이 처음이었던 것도 아닌데 이번 여행은 어떻게 이다지도 완벽한 여행일 수 있던 걸까요. 좋은 장소와 좋은 때,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그 어떤 시기보다도 가깝고 다정해진 지금이어서였을까요. 서로를 가꾸고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가꾼 3년 반여의 시간 동안 우리는 참 잘 맞는 짝꿍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어 손을 맞잡고 있나 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예쁜 여자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기 마련이에요. 더군다나 여행을 다니며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 아이가 점점 더 예뻐지고, 그 예쁜 순간들을 남자아이가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면 그보다 설레는 순간은 있을 수 없겠죠. 눈을 뜨면 팔짱을 끼고, 날이 밝으면 손깍지를 끼었던. 하루를 시작하며 눈을 맞추고, 그 하루를 정리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 온전한 둘 만의 시간은 마치 행복한 미래를 빌려온 것처럼 신비했고 꿈만 같았어요. 꽤나 자신이 있는 글솜씨로도 다 적어내지 못하는 이 맑은 행복감을, 우리는 아마도 평생 우리들만을 위한 추억의 바구니 속에 담아두게 되겠죠. 때 묻지 않고 찬란했던 사랑을 주고받았던 이 짧은 여행이 나는 참 좋았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난 콩깍지 덕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근래에 나는 소설 속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빛나는 선망의 표현들에 당신을 덧대어 읽어요. 때로는 그 표현조차도 나의 연인을 적어 내려가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말이죠. 막 사랑에 빠진 철없는 남자아이의 분별력 없는 감상이 아닌, 한 여자아이를 3년도 넘게 사랑해 온 연인이 건네는 소박한 찬사. 당신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인이 아니던 시절, 21살 당신의 입에 빼빼로를 물리던 열아홉의 내가 오늘따라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네요.


 사랑해요 아가씨.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좋아할게요.



2017.09.25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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