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요 며칠 사이는 너무 바빠서 편지 쓸 시간이 없었어요. 당신도 면접 준비하느라 많이 바쁘죠? 1차 합격 소식 듣고 많이 기뻤어요. 시험 보고 나오면서 펑펑 우는 거 잡아다 달랜 게 엊그제 같은데 합격 문자 온 소식은 울지도 않고 잘 말해주던 걸요. 물론 아직 면접이 남긴 했지만 1차 합격 너무 축하해요. 인정받는 일은 언제나 기쁘죠. 그리고 내가 그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는 아가씨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내가 인정받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참 대화가 많은 짝꿍인 것 같아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부터 이런저런 가치관에 대해서, 사회적인 이슈들과 정책에 대해서, 요리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우리의 말들을 섬세하게 엮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참 우리가 서로에 의해 많이 변했구나를 느껴요. 달라진 생각들과 넓어진 관심사, 말재주. 서로에게 물이 들고 서로의 마음을 물어가며 변해 온 우리가 참 신기하고 웃기네요.
때때로, 아니 사실은 꽤나 자주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어떻게 살아가야지 고민을 해보곤 해요. 요즘에는 그 답 중의 하나를 건축에 관련된 글에서 찾아 열심히 되새기는 중이에요. 건축과 제품 디자인의 차이에 대한 글이었는데 그 글은 그 차이의 핵심이 디자인할 사물이 사람보다 큰 지 작은 지에 있다고 설명했어요. 사람보다 작은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밖에서 그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라보는 시선만을 고려하지만, 사람보다 큰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려해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사람은 때때로 사람보다 더 큰 것들이 되곤 하죠. 누군가를 보듬고 풀어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누군가를 마음속에 들일 수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나의 안에 당신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 그리고 당신이 나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보는 것. 그 글을 읽으면서 나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보다 더 행복한 지향점을 찾은 것 같았어요. 나를 통해서 다른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꾸는 것. 흥미롭고 뭔가 세상이 새롭게 트이는 느낌이었달까요.
참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부족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똑똑하게 머리를 굴려가며 열심히 살다 보면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처럼, 그리고 그 위에 한 움큼 더 얹어 조금씩 더 하다 보면 나름 괜찮게 목표를 이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잘할 수 있도록, 내가 잘 커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세요. 아가씨,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게요.
바쁜 나날들이 끝나면 이제 또 휴가를 나갈 거예요. 안타깝게도 면접 준비 때문에 많이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날은 당신의 생일이니까요. 행복하게 해 줄게요. 사랑해요.
2017.10.19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