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우 Jun 18. 2019

ADEX 그리고 F-22

아흔한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가족


 원래 오늘 편지의 시작은 '안녕하세요, 김형우 병장입니다'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병장이 되어도 꿀벌은 여왕벌이 될 수 없었고 여전히 두 날개 파닥이며 쉴 틈 없이 일만 하더라고요. ADEX, 이 놈의 ADEX 때문에 저는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토잉을 합니다.


 ADEX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및 방위산업 전시회라고 공군이 진행하는 대외행사 중 가장 큰 행사예요. 지난번에 이 ADEX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역시는 역시 역시 엄청나게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지난주 아니 지난 연휴 때부터 저는 재밌는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항공기 견인차량 운전병들은 대부분 항공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새로운 항공기를 토잉 해보고 싶어 해요. 조종사나 정비사와 함께 항공기에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친구들인 만큼 애정이 높은 편이죠.


 지난 추석 연휴 때부터 전시를 위한 항공기들이 슬슬 서울공항에 도착하기 시작했어요. 시작은 수리온이었죠. 연휴 기간에 갑자기 배차실로부터 계획되어있지 않은 근무 전파가 와서 제가 나갔는데 하늘에서 수리온(KUH-1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기반의 의무헬기가 랜딩을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KAI 쪽 분들에게 차만 빌려주는 형식의 근무였는데 알고 보니 야외 주기가 아니라 ADEX 전시장 내로 들어가야 하는 고난도 토잉이라 결국 핸들을 잡았어요. 아저씨가 너무 떠시는 게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안타깝더라고요. 덕분에 토잉 경험도 좀 쌓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헬기 위치 조정을 위해 손으로 헬기를 같이 밀어 보기도 했네요. 재미있었어요.


 그다음 주에는 다른 비행단들에서 터그 차 운전병들이 파견을 왔어요. F-15K, KF-16, T-50 등의 항공기를 토잉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ADEX 행사장 쪽은 우리 쪽 선임 한 명이랑 이 친구들이 맡게 될 것이라고 해서 전시 항공기들 토잉은 우리가 못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 주에는 고공낙하 시범 공연을 준비하는 팀 준비를 하게 돼서 그 유명한 치누크 HH-47를 토잉 해볼 수 있었어요. 바퀴 구조가 지금까지 토잉 한 그 어떤 항공기와도 달라서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뿐히 지원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죠.


 그 주에는 계속해서 한국 육해공군의 항공기들이 전시를 위해 도착하고 블랙이글스를 비롯한 시범비행 연습이 계속 이어져서 볼거리가 많았어요. 심지어 미 공군 항공기인 C-17 수송기와 E-3 조기경보기도 도착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네요. 정말로 경악스러운 위용이더랍니다. C-17은 정말 하늘에서 괴물이 내려오는 것 같았어요. 웬만한 건물보다도 큰 항공기가 가뿐히 랜딩을 하더니 전시 위치까지 알아서 후진을 하며 주기를 끝마치더랍니다. 엔진 역추진을 통해 하는 것이라는데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어요.


 하지만 가장 놀라운 일은 그다음 날인 토요일이었습니다. 갑작스레 ADEX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파견병들은 없고 심지어 ADEX를 지원하는 선임은 외출을 나간 상태였어요. 그래서 감독관님 지시 하에 우리 중대 인원들로 지원을 나가기로 하고 저랑 제 후임 한 명이 근무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항공기들이 심상치가 않더라고요. 바로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라이트닝 II 였죠. 평생 눈으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항공기들이 우리 비행단에 오다니, 활주로 바로 옆까지 구경을 나온 후임들이랑 서울공항에 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지상 활주 중인 랩터가 우리들 앞에서 꼬리 날개를 세 번 정도 흔들며 인사를 해주더랍니다. F-35 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F-22는 항공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전투기였어요. 항공기라면 당연히 랜딩 할 때 엔진음을 포함해 굉음이 나는 것이 당연한데 F-22는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게 랜딩을 하더라고요. 신비스럽기도 하면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어요.


 미군 항공기들이 정지한 후에는 타워 지시를 받아 행사장 쪽으로 가 대기를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터그 차 쪽으로 미군 한 명이 찾아오더랍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어요. 지금까지 미군 항공기는 우리가 미리 파견해준 터그 차로 미군이 토잉을 진행하는 것으로 끝났었거든요. 심지어 지난 ADEX 기록에도 그렇게 적혀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우리 쪽으로 오더니 차를 빌릴 수 있겠냐고 하더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군 터그 차는 국산이라 모든 기능이 한글로 적혀있기 때문에 제가 통역과 견인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동승했어요. 미군과 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친구가 차를 몰고 향하는 방향 끝에 있는 것이 바로 F-22 랩터였습니다.


 아직 펜스도 쳐있지 않고 랜딩 후 정비가 끝나지도 않은 랩터 앞에 선 그 느낌이란. 천천히 기체를 구경하고 터그 차에 동승해 토우 바를 연결하는데 기분이 짜릿하더라고요. 토우바까지 연결하고 항공기와 마주하는 그 시선은 터그 차 운전병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거든요. 랩터 두 대를 전시 위치에 주기할 때까지 쭉 함께하는데 기분이 말할 수도 없이 좋았습니다. 대체 한국에서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터그 차를 운전하는 미군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같은 토잉 인력으로서 고충을 이야기하고 한국과 미국의 다른 토잉팀 운용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어요. 미군은 항공기 정비사가 각 항공기의 토잉을 맡고 따로 토잉 팀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하나의 토잉 팀이 전체 항공기를 다 다룬다고 하니 프로페셔녈한 것 같다면서 신기해하는 것을 보면 같은 공군이라도 참 다른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서로의 기지, 알래스카와 서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랩터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나서야 근무가 끝나서 헤어졌습니다. 랩터의 토잉을 끝마치고 나서는 다른 미군들과 함께 F-35A의 토잉도 지원을 해줬어요. F-35A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전시를 위해 도착한 것이 한국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두 항공기 모두 미 공군이 가지고 있는 핵심전력에 보안 수준이 상당해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해요. F-35A도 처음이라지만 F-22 역시 한반도에 랜딩 한 이력도 단 두 번 밖에 없고 그것도 한국 공군 기지에 랜딩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ADEX 전시 기간에도 광범위하게 펜스를 쳐두고 방탄복까지 입은 무장 미군들이 서서 지키고 있어서 가까이 가서 구경하는 것도 어렵다고 합니다. 저 날 이후로는 F-22와 F-35A 모두 미군이 미군 터그 차를 이용해서 토잉을 하고 있다니 어쩌면 저는 두 항공기를 함께 토잉 해본 첫 한국인이자 그렇게 항공기에 가까이 다가간 몇 안 되는 한국인일지도 모르겠어요.


 미군 지원을 끝내고 나서는 한국 공군의 F-15K, KF-16 등의 항공기 전시 위치를 바꾸는 일을 하고 돌아왔어요. 알고 보니 우리를 부른 근무 요청이라는 것이 한국 공군 쪽 요청이지 미군 공군 측에서 온 지원 요청이 아니었더라고요. 심지어 F-22는 그 날이 아닌 그 전날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으로 그 날 오게 된 것이었어요. 수많은 우연이 겹쳐 생긴 뜻밖의 이벤트였습니다. 아무 이야기도 못 듣고 온 바람에 평소 주말 근무 복장인 체련복 차림으로 나온 것이 좀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항공기 견인차량 운전병으로서는 최고의 하루를 보냈네요.


 그 이후에도 종종 지원을 하며 KA-1, KT-1 같은 새로운 항공기들도 토잉 해보고 ADEX 행사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블랙이글스 공연, F-22 / C-17 시범비행 등을 보면서 재밌는 한 때를 보내고 있어요. 때로는 밥도 못 먹고 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ADEX 행사장에서 대기를 하면 편지를 쓰는 중이에요. 매일매일 꾸준히 일을 해내고 있는 김병장이네요. ADEX는 2년마다 이 곳 서울공항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한 번 같이 와볼까요? 또 편지 쓸게요. 사랑해요.



2017.10.20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