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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18. 2019

생일 축하해

아흔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편지지를 사러 다녀왔어요. 마음에 드는 편지지가 많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만족할 만한 세트가 있어 집어 들었네요. 단출하지만 정직한 종이 디자인에 독특하면서도 수수한 맛이 있는 편지 봉투. 선물할 무언가를 고른다는 것은 여전히 참 고민스러운 일이에요.


 그래도 그 모든 것을 하나씩 준비해 나가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것은 선물을 받아 든 당신과 그 선물들로 기념할 당신의 생일을 내가 참 좋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당신이 좋아할 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두었다가 생일이라는 핑계와 함께 꺼내 드는 하루. 내가 얼마나 이 날을 좋아하는지, 당신은 아마 평생 모를 거예요. 생일 축하해요.


 선물을 열심히 준비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이번에도 선물은 두 개랍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너무나도 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반년 전부터 준비해둔 선물들이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 두 선물이 마음에 들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이 날을 기다렸는데, 막상 전날이 되니 걱정도 조금 되네요.


 첫 번째 선물은 케이프 블랭킷이에요. 말하자면 입는 이불, 망토 이불이네요. 추위를 많이 타는 당신. 가을이 기지개를 켜는 날 즈음에 태어나 당신 생일 즈음에는 언제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죠. 따뜻한 연인이 곁에 있으면 손이라도 잡아 체온을 나누어 버텨봄 직도 하지만 나 없을 때 추위에 떨까 봐 이렇게 이불을 준비해 봤어요. 낫낫한 재질에 당신이 입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듯한 디자인. 소재도 마음에 들고 브랜드도 믿을만하니  오래오래 입어줄 수 있을 거예요. 오래오래 따뜻하게, 이불에 안겨 내 생각을 해주세요. 어김없이 공기가 찬 10월 29일. 내년 이 맘 때가 되면 당신은 이 이불을 옷장에서 꺼내들겠죠.


 두 번째 선물은 가방이에요. 명품도 아니고 그렇게 특별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그런 가방이죠. 한복을 참 좋아하는 당신, 요즘에는 한복을 입고 나들이도 많이 다니지만 같이 데이트에 나설 때마다 나는 가방이 참 마음에 걸렸어요. 사진을 찍어줄 때마다 빼앗아 들게만 되는 가방들. 한복은 참 어울리는 가방을 찾기가 힘든 옷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짐했어요. 이번 생일에는 반드시 한복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그런데 역시 한복 가방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한복에 어울리면서도 세련된 감각에, 평소에 우리 아가씨가 들고 다니는 것들을 다 담을 만큼은 넉넉해야 하고, 우리 콩 옷이랑도 어울려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한복을 판매하는 쇼핑몰 등에서 가방을 파는지 찾아봤는데 마땅한 것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쇼핑몰들의 한복 피팅 컷들을 다 돌아보면서 코디를 참고하고 어울리는 가방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 쪽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역시 한복+가방은 쉽지 않은 조합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한복 패피들의 실력을 믿고 인스타그램에 #한복, #한복가방으로 검색을 해서 아이디어를 구하기 시작했어요. 이미 멘털의 자세는 맨땅에 헤딩. 2천 개 정도의 포스팅을 보고 넘길 때 즈음에 마음에 드는 가방이 보이더랍니다. 지나치게 클래식하지도 않고, 용량도 넉넉해 보이는 에코백인데 주머니 디자인을 한복 저고리 옷깃 모양으로 디자인해 한복스러움도 충분한 그런 가방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알고 보니 그 가방이 포스팅 올리신 분이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이더라고요. 역시 세상 쉬운 게 하나 없죠? 다행히 7월부터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해 겨우 제작을 부탁드렸습니다.


 물론 손바느질 특유의 조그만 실수들과 인스타로는 확인할 수 없는 차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리 아가씨를 위한 두 번째 선물이 준비되었어요. 잘 어울릴지, 내 생각만큼 옷과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우리 아가씨. 잘 써주길 바라요.


 내일은 추워서 우리 콩이 한복을 입지 않는다고 해서 가방이 어울리는지는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어요. 사실 요 근래에 선물 아닌 선물을 위해 준비한 게 있는 지라 추위가 야속하기도 하네요. 한복 입은 우리 아가씨를 위해, 나도 모던한 저고리 하나를 준비했거든요. 더 어울리는 짝이 돼보려고 한복 소년이 되려 하는데, 당신은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해할까요?


 생일 축하해요. 면접 준비에 치여 한창 바쁠 때 맞는 생일이긴 하지만, 내가 함께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줄 테니 마음껏 웃고, 기뻐해 주길 바라요. 언제나 사랑하고, 고마워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날에는 다행히 둘 다 한복을 입고 한복 데이트를 했습니다.



2017.10.28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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