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줌의 주객 관계

열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19

by 김형우

To. 엄마


모든 일정을 끝내고 생활관으로 돌아왔을 때, 한 통씩 도착해있는 엄마의 편지를 보면 뭐랄까. 어렴풋이나마 이 먼 곳에서도 집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훈련소에 있던 기간 동안 보내준 편지들을 보면 엄마가 이 작은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그리고 때로는 글로 다 적지 못한 마음이 얼마나 큰 지까지 느껴지곤 해요. 엄마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주는 그 편지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지난주 각개전투 훈련을 끝내고 대대로 복귀하면서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어요. '조국을 지킨다'라는 말이 갑자기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지금까지 우리는 '조국이 우리를 지켜준다'라는 말을 당연시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당연한 주객 관계가 뒤바뀐 지금. 어쩌면 이 간단한 차이가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엄마와 아빠의 보호 속에서 자라고 있어요. 그리고 곧 나를 지켜준 엄마와 아빠를 내가 지켜줄 날이 오겠죠. 그 후에는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고 또 그 아이들에게 보호받을 날이 올 거예요.


엄마 아빠가 나를 20년도 넘게 지켜준 것을 생각하면 내가 국가를 지켜야 하는 2년은 참 값싸고 짧은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예비군과 민방위 기간도 있지만, 2년 현역을 참고 나면 평생을 지켜준다니 해볼 만한 일 아닌가요. 더군다나 이 2년이 지켜주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닌 내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일 테니 흔쾌히 군인으로서의 생활을 즐겨보려고 해요. 다들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던 어린 시절에도 나는 어른이 되기 싫어했는데, 엄마 아들도 슬슬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곧 있으면 훈련소를 수료하고 잠시 동안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거예요. 짧은 외박 동안 바쁘긴 하겠지만 엄마 먹고 싶어 하는 아들 표 리조또도 해주고 애교도 부리고 할게요. 얼마 안 남은 이 시간,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기다려주세요. 사랑합니다.


2016.06.19 - 아들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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