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19
To. 콩
요즘은 모든 편지를 공군 편지지가 아닌 우리 아가씨가 보내준 편지지에 쓰고 있어요. 부모님께 보낸 편지를 포함해 4번째 편지를 쓰고 있는데, 새삼 참 예쁜 편지지를 골라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중간중간 돋보이는 텍스트도, 색감이 편안한 일러스트도, 심지어 줄의 모양과 간격까지 마음에 들어 글을 적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있어요. 고마워요 아가씨.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 우리 모두가 말을 하고 대화하는 것을 편지라고 한다면, 그 뒤에 있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편지지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나는 당신이 보내준 이 편지지들이 더 예뻐 보이고 그렇네요. 이 편지지를 보면 편지지를 고르는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편지를 쓸 때 단어를 골똘히 생각하는 누나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덥혀지곤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예쁜 편지지라서, 정말 예쁜 마음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어제 쓴 편지에는 수료가 다가오고 훈련도 거의 다 끝나서 평화의 단꿈을 꾸는 우리의 모습을 잠깐 적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소대 조교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를 운동시키기 시작하셨네요. 평소에도 우리가 건강소대라는 점을 고려해서 간단한 운동을 추가로 시키긴 하셨는데, 어젯밤에는 조금 프로페셔널하게 우리를 트레이닝시키려고 준비를 하셨더라고요. 소대 조교님 중 한 분이 입대 전에 미국에서 MMA(종합격투기) 쪽에서 일을 하셨던 분인데 버피 테스트, 피치, 베어 워킹 같은 운동법을 소개해 주시면서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운동을 시켜주셨어요. 군대답지 않게 참가 여부는 자유 의지에 맡기셨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따라나서서 즐겁게 함께 굴렀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가끔씩 누나도 운동 참 좋아하는데 라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어요. 입대 전에 같이 배드민턴 치다가 다친 골반은 이제 다 나았나요? 나 입대하고 나서 주말에 배구 동호회에 들어갔다고 해서 놀랐는데 부디 어디 안 다치고 잘 하고 있길 바라요. 그래야 나도 안 다치고 건강하게 수료해서 우리 아가씨 보지요. 활달한 여자친구 같이 놀아줄 남자친구가 없어서 허전할 텐데 얼른 같이 놀아주러 갈게요.
오늘 점심때 부식으로 나온 우유의 유통기한이 6월 24일인 것을 보고 다 같이 웃었어요. 참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웃는다 싶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어느새 5일 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좋을 수밖에요. 시간이 은근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가고 있나요? 호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릴 때 한마디 씩 쓰라고 해서 '나를 기다리는 여러분의 시간도 이렇게 빠르기를!'이라고 적었는데, 당신의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기를 바라요. 곧 봐요. 정말 사랑합니다.
2016.06.19 오후 - 편지지를 쥐고 형우가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