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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22. 2019

4년을 모아 담은 사랑고백

백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일 년에 하루 정도라도, 같은 일로 괜스레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생일도 좋고, 크리스마스도 좋고, 어린이날도 좋고. 그리고 또 하나 더 넣어줄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에게는 1월 12일이겠죠. 4년 전의 저 하루, 내가 처음으로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그랬잖아요.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우리, 우리는 하루하루 달력을 세는 것과는 친하지 않아서 1000일도, 1100일도, 1400일도 얼렁뚱땅 넘겨버리고선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 하죠. 시간이 쌓이는 만큼 추억이 참 많이 늘어서 뒤를 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남아있는 시간들이었어요. 1500일도 그다음도 분명 놓쳐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항상 1월 12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두근두근해져서 이렇게 편지를 적게 됩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실 이런 감정들이 무엇인지 잘 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서로 덕에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참 고마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네요. 때로는 마르게, 때로는 조금 촉촉하게 서로를 좋아해 온 우리가 나눈 4년이라는 시간이 나는 여전히 너무 짧게 느껴져요.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이고 때로는 화려한 것 하나 없이 둘이서만 나눈 사랑이었지만 나는 그 사랑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욕심이 나나 봐요.


 무던하고 나른한 성격의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라는 것이 많이 없었어요. 지난 4년 동안에도 당신에게 어떻게 해달라, 어떤 사람이 되어달라 말하지 않던 나는 조금 커서 20대의 꼬맹이가 되어서도 세상에 바라는 것이 별로 없었죠. 그저 그냥 내 곁에 서서 손깍지 단단히 끼우고 걸어주는 당신이 보고 싶고, 그리울 뿐이었어요.


 언제나 기분이 맑고 포근한 편인 나는 사실 행복이라는 게 그런 것인 줄 알았어요. 세상에 좋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좀 태평하고, 조금은 졸린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 마치 대나무를 오물거리다 잠이 든 판다 같이 나른하고 편안한 그 기분이 행복인 줄 았았죠. 물론 기분도 좋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또 다른 행복을 느껴요. 만나면 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기분, 조심스럽게 머리를 정리해주고, 예쁘다는 말을 가슴속에서 한두어 개 문장 정도 꺼내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조금 넘칠 것 같은 기분. 시간이 지나도 이토록 사랑스러운 나의 당신도 이런 행복함을 느낄까요.


 4년 동안, 아마도 우리 사랑도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서로에게 뺨을 비비고, 이리저리 놀러 다니기 바쁜 쾌활한 커플이라 이곳저곳 닳은 곳이 많으니까요. 덕분에 점점 꼭 알맞게 맞붙는 이 사랑을 앞으로도 우리는 잘 가꾸고, 칠하고, 다듬어 계속해내 갈 거예요. 그래서 난 고맙고, 또 고마워하며 이 짧은 편지를 씁니다. 쓰고도 남은 마음은 만나서 건네어줄 테니, 우리 아가씨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입고 나오길 바라요.


 사랑해요.


2018.01.11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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