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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23. 2019

성장해 나아간다는 것

백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엄마


 정말 힘든 일주일이었어요, 엄마. 여자 친구 귀국하는 것 마중 나가러 딱 2박 3일 휴가 다녀온 것뿐인데 돌아오니 곤란한 숙제 거리가 한가득 쌓여있더라고요. 시작은 일요일이었어요. 오랜만에 아무 일도 없는 주말이라 속으로 자유의 탭댄스를 추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중대 일병 후임이 방문을 두드리더랍니다. 중대 문제로 긴히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데, 들어보니 중대 내 군기반장인 상병 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군기반장이라고 해도 옛날처럼 후임을 때리거나 가혹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엄격한 훈계와 그 사이 섞인 조금의 오해들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었죠. 이 정도는 괜찮다고 넘길 만한 것들도 분명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말은 참 주관적인 기준이고 이미 많은 친구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어요.


 중대 최고참인 것은 아니지만, 맏형 노릇한 지는 오래라 서둘러 수습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일병 친구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병장 친구들을 모아 상황을 공유해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견을 들으러 다녔죠. 그렇게 맞은 첫 번째 밤에는 믿을만한 동기와 함께 상병 친구를 불러 이야기 자리를 마련했어요. 우선은 이 상황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였어요. 후임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군대라는 환경 덕에 매달 달라지는 계급과 호봉이 어떤 무게감과 압박감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또 정당한 훈계 사이에 섞였던 오해 섞인 훈계들과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실수들이 있었는지 알려주었어요. 또 그 실수들로 인해 다른 훈계들의 뉘앙스가 어떻게 왜곡되고 후임들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주었는지도 설명해주었죠.


 결론은 간단했던 것 같아요. 상병 친구는 앞으로 훈계를 하는 것을 멈추고, 조금 거리를 둔 채로 후임들끼리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게끔 하자는 것이었죠. 쉬운 설득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냉정히 판단해도 후임들이 잘못한 부분이 많았고, 잘못 자체를 바로잡는 행위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설득의 요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반은 억지로 온 사이들이니, 서로를 이해하고 다들 웃으며 일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자는 것이었죠. 실수를 해도 조금 천천히 바로잡을 수 있고, 작전과 훈련 상황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은 천천히 내려놓자는 의미였어요. 자신의 경험을 섞어 옆에서 이야기를 도와주는 동기애가 큰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고마웠어요.


 그런데 사태는 그렇게 쉽게 맺음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상병 친구는 함께 이야기했던 대로 그다음 날 출근해서 일병 후임에게 사과를 했어요. 문제는 자신이 사과한 만큼 일병 친구도 사과해주길 바랐던 상병 친구에게 일병 친구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한 것이었죠. 이번에는 동기와 함께 후임 아이와 다시 한번 토킹 타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친구들이 상병 아이를 이해해줄 필요도 있었거든요.


 시작은 아마도 사과였던 것 같아요. 일단 후임들끼리의 일이긴 하지만 중대 내의 일에 대해 최고참들이 신경을 제대로 못쓰고 사전에 막아주지 못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다음은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아요. 사실 군대에는, 특히 병 사이에는 8개월에서 12개월 단위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진 세대들이 등장해요. 그중에서 저와 상병 아이가 속한 760번대 기수는 수송대대의 악폐습을 근절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세대이고요. 하지만 악폐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후임들의 노력으로 선임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관습들이에요. 그리고 악폐습을 정리해낸다는 일은 자신이 후임일 때 받아야 했던 피해를 다 견디고 선임이 되었을 때는 누릴 수 있는 이권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죠. 분명 마땅히 개선해야 할 것들이지만 같은 세대라 한들 동기나 선후임들에게 함께 피해를 감수하자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자발적으로 그 변화에 공감하고 함께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죠. 부당한 일들이지만 여전히 그들이 부당한 대가를 치른 마땅한 권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변화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상병 아이한테 크게 뭐라 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며 우리는 일병 아이에게 천천히 변해가고 있는 선임들을 기다리고 이해해달라고 말해주어야만 했습니다. 또 후임 아이에게도, 그 아이와 마찬가지로 선임들 역시 이곳에 2년 동안 끌려온 입장인 것은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죠. 이해받아야 할 사람은 어느 한쪽이 아닌 모두고, 견디고 성장해야 하는 것도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후임 친구도 마음이 좀 풀리고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여주더라고요. 그날 밤에는 일상병 친구들을 다모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당부를 했어요. 결국 우리는 새로운 세대를 돕고 떠나가야 할 세대로 물러나야 하니까요.


 그렇게 2월의 난장판이 막을 내렸습니다. 모두 나름의 만족과 나름의 변화를 떠안은 채로. 조금 느리지만 썩 괜찮은 엔딩이었죠. 스트레스를 진짜 많이 받았었어요, 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로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왼쪽 각막에 스크래치가 나서 3일 동안 눈도 못 뜨고 다녔으니 말 다했죠. 아이들이 미안해서 슬그머니 눈치 보고 다니는 것도 귀엽긴 했지만, 제발 그렇게 미안할 일 하지 말고 행복하게들 싸우지 말고 지냈으면 좋겠네요.


 에휴



2018.02.07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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