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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Sep 27. 2019

그림자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 고려대학교 우당 교양관

To. 아름다운 나의 연인


안녕, 아가씨. 찬 바람이 두어 가닥 더 불어와 가을이 되었구나 싶은 하루예요. 오늘 아침은 수업이 일러 잠을 조금 덜어내야 했지만, 아침 하늘이 참 맑고 높아서 기분이 좋았네요. 항상 분주한 출근길을 거니느라 당신은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빵을 사다가 늦었다는 소식에 고소한 빵 냄새를 담아준 것처럼 이렇게 내가 작은 글 조각에 그 하늘을 담아 보냅니다.


이제는 오후가 된 오늘, 오늘은 참 사소한 일들 투성이인 평범한 하루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어제 조금 늦게 잠이 든 당신이라, 피로에 살짝 젖은 오늘은 약간 버거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탈 없이 하루를 차근차근 살아오는 당신이 참 예쁘고, 여전히 내게 우리 아가씨는 아무 이유 없이 고운 글을 받아봤으면 하는 사람이라 특별히 이런 평범한 날을 골라 글을 적습니다. 평범한 마음으로 평범한 애정을 담아, 평범한 글솜씨로 말이에요.


참 맛이 달고 좋은 계절이라, 무르익은 마음으로 매주 맞이하는 당신은 항상 예쁘고 빛이 납니다. 지난 주말 앤의 전시를 보러 다녀오는 일은 정말 즐거웠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일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하며 추억을 나누고 싶어 했던 당신의 권유를 못 들어주고 있었는데, 행복한 추억을 하나 덧대어 나누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같이 놀러 가줘서 고맙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어 고마워요.


요 근래에는 학교를 다니느라 퇴근하는 아가씨를 마중 나가지 못해서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단꿈을 꾸고 나와 예쁘고 살가운 미소를 짓는 당신을 맞는 것도 좋지만,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고 나와 이곳저곳 모난 당신을 맞는 것도 내게는 참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었거든요. 오롯이 당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에 숨기고 감싸 둔, 그렇게 상처 입은 당신을 만나 매만지는 일을 당신에게만 맡겨두고 싶지는 않거든요.


당신의 연인도 당신에게는 참 소중해서, 되도록이면 가시가 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또 어쩌면 그런 그늘진 아가씨가, 그림자 속의 아이가 더 진실된 나의 연인일지 몰라 사랑하는 것을 멈추기 어려워요. 태연히 다가가 장난을 걸고, 손을 잡고 톡톡 녹여서 웃게 하는 그 일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말. 그 말은 이 편지에 두어 번 더 얹어줘도 내 마음속에 가득 남아있어서, 내일도 그다음 날도 건네줄 수 있답니다.


세상을 거니는 당신도 참 맑고 어여쁘지만, 아무도 모르게 혼자 남은 당신, 헝클어진 머리에 마음이 살짝 삐뚤어진 당신도 나는 참 사랑스러워요. 빛 하나 없이도 아름다운 그대라서, 내게는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대라서 오늘도 나는 그림자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전하네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 화나고 억울한 일 없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라지만 만약 오늘이 힘들었다면 내게 이야기해 주세요. 가장 어둡고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어줄게요. 나쁜 아이도 사랑해주는 고운 품이 될게요.


사랑하고 고마워요.

초록 반점 바나나 물들지 말아요.


2019.09.27




*때때로 전하고 싶은 편지글이 있을 때 찾아올게요.

**초록 반점 바나나는 매거진 '담쟁이에게 보내는 시' https://brunch.co.kr/@byebypolars/96 에서 가져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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