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법.

진짜 열한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20

by 김형우

어제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편지'라고 적은 포스팅을 올렸어요. 그런데 오늘 열 번째 편지와 열한 번째 편지 사이 시간대의 편지 두어 장을 발견해서 얼른 한 편씩 적어 올리려고 합니다. 마지막 편지였던 것은 맞으니까 거짓말은 아닌 걸까요?



To. 엄마


왜인지 모르게 시간이 조금 나서 편지를 하나 후다닥 써보려고 해요. 아가씨한테 줄 편지는 이미 써놓고 또 쓰는 거니까 누나 걱정은 조금 덜고 읽어주셨으면 하고요. 틈날 때마다 엄마 편지를 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에 제대로 답장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글을 하나 써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읽었다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당히 좋았어요. 차분하고, 먼지 냄새나는 포근하고 평화로운 책이죠? 정말 군대 오기 직전에 중고서점에서 살짝 충동적으로 사 온 책이었는데 참 좋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헌책이라니, 중고서점에서 사 왔다는 것 덕분에 은근한 낭만이 더해진 책이었죠. 저는 거창하고 화려한 내용의 책들도 좋지만 이렇게 은은하게 고소한 맛이 나는 책도 좋은 것 같아요. 입 안에서 깨가 하나씩 터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의 글도 써보고 싶네요.


누군가를 기억하고 생각해주는 방법 중 가장 재미있는 방법은 바로 그 사람이 좋아했던 것들을 따라가 보는 것 같아요. 나랑 엄마는 책도 많이 같이 읽고 영화도 같이 보고 함께 음악도 많이 듣곤 했지만 그래도 아직 같이 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보다 보면, 함께 있지 못해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덤이고요.


엄마가 편지에 써둔 내용 중에 나의 어질러진 방을 보면서 허전함을 느낀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어질러진 방 안에는 우리 엄마의 아들내미가 가득 차 있답니다. 때로는 내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 때로는 내 CD장에서 음악을 꺼내며 아들과 이야기할 것들을 찾아주세요. '담요'나 '인티사르의 자동차' 같은 그래픽 노블도 참 좋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도 읽고 '에픽하이'나 '자우림'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곁에 있을 거예요.


어제 오후에는 수료식 연습을 했어요. 길을 돌고 돌아 우리가 입단식을 했던 대연병장에 들어서니 내가 입대할 때 엄마가 서있던 자리가, 아빠가 서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시간이 아주 조금 더 흘러 다시 그 자리에 서면 우리가 어떻게 웃을지 궁금해지네요. 오늘은 행군 훈련이 있을 테니 편지를 그만 줄이도록 할게요. 행복하세요 엄마, 사랑해요.


2016.06.20 - 아들.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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