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6.23
To. 엄마
드디어 수료 하루 전이에요. 모든 훈련병들이 그렇듯 엄마 아들도 수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부르고 배는 꺼져만 가는 마법에 걸려 고생 중입니다. 수료식이 끝나고 꿀맛 같은 휴가를 맞게 되면 해치워야 할 메뉴판이 길어서 고민이에요. 진주냉면, 파닭, 라면, 리조또, 쿠바 샌드위치. 소문에 의하면 요즘 윗동네 정은 씨가 시끄럽다고들 하지만 아들의 꿈과 메뉴판은 아직 건실합니다. 얼른 나가야지.
요즘 엄마가 보내준 편지들을 보면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참 행복의 방법이라는 게 어렵고 복잡한 문제죠. 엄마가 써 준 내용처럼 돈은 행복보다는 슬픔에 관련된 것 같기도 하고, 꿈꾸는 것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기도 하고. 친구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나는 아직 잘은 모르겠어요. 아직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경험도 많이 짧은 만큼 확신이 있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것 같아요.
행복이라는 못된 친구의 복잡한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온다면 나는 계속 행복할 것이라 믿어요.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고, 누군가를 웃게 해 줄 수 있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마음을 쏟는 그런 삶의 방식 자체가 내게는 자연스럽고 몸에 익은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런 행복은 다행히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 곁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는 못하지만 군인이 되었다고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추억하는 삶도, 기다리는 삶도, 궁금해하는 삶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그 만의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달까요.
나의 군 생활 첫 6주는 행복했어요. 편지 쓸 시간이 없어 새벽 5시에 눈을 비비며 일어날 때도, 유격훈련을 한 후에 연병장에 누워 엄마 생각을 할 때도. 어려운 훈련들을 하나하나 이겨낼 때도, 건강을 위해 간식을 참을 때도 나는 행복했어요. 아직은 이등병도 아닌 훈련병. 내일 수료식이 끝나야 작대기 하나라도 달 수 있겠지만 이 6주는 충분히 행복한 시작이 아닐까 싶네요.
때로는 이런 삶의 방식이 엄마로부터, 나의 주변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내 기억 속에 남은 얼굴들이 모두 웃는 얼굴밖에 없거든요. 엄마의 웃는 모습, 아빠의 웃는 모습, 형의 웃는 모습, 콩씨의 웃는 모습. 나는 그 얼굴들이 좋아서 앞으로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행복하도록 바라고 그러도록 애쓰고 싶어요. 수료식이 있는 내일도, 그런 날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사랑해요.
2016.06.23 - 훈련병 마지막 날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