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01-02
To. 콩
오늘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면서 10분간 비가 내리는 것을 봤어요. 비가 내리는 모습이 참 신비롭고 예쁘더라고요. 세차게 굵은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물이 고운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보면 물결이 뛰노는 것만 같고, 잔비가 사선으로 내려올 때는 하늘에 바람을 그려놓은 것만 같죠. 딱 10분 동안이었을 뿐인데 비가 내리는 모습이 수십 번도 넘게 변하는 것을 보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그렇게 한 순간 한 순간의 세상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 것만 같기도 해요.
첫 문단을 적어두고 또 하루가 지나 주말이 되었어요. 군인의 주말이란 참 예상외로 평화롭고 한가로운 것 같습니다. 특기학교에 와서 그런 지 훈련소에서 지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판타지 월드가 열렸어요. 아침을 먹고 와서 쉬다가 점심을 먹고 와서 TV를 보며 하루 종일 쉬고 있답니다. 사회에서도 집에서 이렇게 쉰 적이 없어서 뭔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순조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어요. 다음 주에는 다들 면회를 와준다니 바깥에서 보내기도 할 테고, 주말은 참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배구를 하고 왔을까요? 매번 나랑 보내던 토요일에 새로운 취미를 잘 찾아 노는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좋았어요. 외박 때도 같이 배구하는 친구들이 연락 온 것 보고 정말 잘 적응한 것 같아 기분이 더 좋더라고요. 시험이 다가와서 스트레스도 받고 부담도 되겠지만 매주 운동 겸 놀러 가서 스트레스 푸는 것은 쉬지 말아주세요. 그렇다고 또 이리저리 무리하고 돌아와서 아프면 안 되는 것 알죠?
행정처리가 좀 늦어지는지 인터넷 편지가 수요일 것까지 밖에 안 와서 누나 편지는 아직 하나밖에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 한 장에 참 이야기를 가득 담아 준 것 같아 즐거웠어요. 두통은 이제 다 나았나요? 내가 보기에는 나랑 놀다 병난 거 같긴 하지만 누나 말마따나 공부 안 해서 두통 온 것도 맞을 거예요. 식객으로 오신 고양이님도 적응을 마친 것 같고, 콩의 일상도 정상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 같군요.
쉬엄쉬엄 지나가는 하루. 오늘 저녁 때는 밥을 먹으려고 기다리다 노루들을 봤어요. 비 내리는 산비탈에 4마리 정도의 가족이 내려와서 풀을 뜯더라고요. 정말 신비의 나라 진주인 것 같죠? 내가 오늘 느낀 편안함을 당신이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누나도 지금 누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닦달하지 않으려고 해요. 시간은 흐르는데, 언제나 시간은 좋은 일과 미루고 싶은 일을 같이 가져와요. 그러니까 좋은 일을 바라는 만큼 다른 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겠죠. 나도 이 곳에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누나도 힘 내주세요. 사랑해요.
2016.07.01-02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