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06
To. 엄마, 아빠, 형
매미도 울고, 하늘도 울고, 나도 우는 하루입니다. 여름이 오긴 오나 봐요. 훈련단 기간 동안에는 그렇게 안 오던 비가 특기학교에서는 장마를 맞아 하늘을 가득 적시네요. 오늘은 1 구간 실습 5회차 겸 시험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아들이 그리던 장밋빛 자대배치에는 먹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네요.
시험은 음, 묘했어요. 운전 자체로는 감점받은 것이 거의 없었는데, 시험 도중에 정지하고 기어를 중립으로 둘 때 기어봉을 본 것 때문에 감점을 조금 많이 받았어요. 사실 주행 중에 기어를 보면 전방주시에 방해가 되니까 감점 사항인 것은 맞지만 정지 시에 기어를 보는 것은 따로 감점 사항인 것 같지도 않고 감점 사항이라고 알려주시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점수를 팝콘 줏어먹듯이 까먹어버렸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운전 점수로는 최상위권인데, 이상한 부분에서 너무 점수를 잃었네요.
그래도 97명 중 60등 정도는 될 것 같아 깡패 같은 기훈단 성적과 죽어도 기어를 보지 않을 6 구간 성적을 고려하면 수원이나 평택, 청주나 원주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휴. 감점을 많이 받아서, 그것도 운전 외적인 부분에서 감점을 많이 받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니까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것이 남아있네요. 그냥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열심히만 해야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만은 윤택하게! 아이고 얼른 자대나 가고 싶네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어서 그런지 두 번째 책도 거의 다 읽어가요. 곧 다른 사람 책을 빌려보거나 도서실을 찾아야할 지도 모르겠어요. '기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는 생각보다 텁텁한 맛의 책이었어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같은 부드러운 먼지 냄새가 나는 책일 줄 알았는데 먼지가 조금 두텁게 쌓여서 읽다가 간혹 기침이 날 것 같은 책이랄까요. 나쁘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렇게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조금 더 소재를 잘 살려서 글을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편지를 쓰는 사이에 책을 다 읽어버려서 이제는 마지막 책인 픽사스토리로 넘어왔어요. 군대에 와있긴 하지만 짬짬이 책을 읽으면 정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드네요. 사실 장마의 영향인지 우리 호실과 우리 옆 호실의 TV 와 시계 쪽 전선들이 망가져서 지금 TV 도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조금 군인다운(?) 여가 생활을 즐기나 했는데 일주일만에 시련이 찾아와 다들 멘탈이 흔들리고 있죠. 나는 책이나 읽으면서 쉬고, 편지 쓰고 글 쓰고 하며 조금 조용한 시간을 보내볼까 합니다.
주말에 태풍이 온다고 해요. 엄마랑 아빠, 그리고 우리 아가씨가 함께 면회를 온다니 기분이 좋네요. 엄마, 아빠와 누나는 서로를 처음 만나는 거라 걱정도 되지만 모두 함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네요. 시험을 망치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사랑합니다.
2016.07.06 - 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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