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07
To. 콩
휴 없다 없다 해도 자대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네요. 나는 어디를 가든 괜찮긴 한데, 생각하면 할수록 내 자대 배치가 나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책임감이 부족했나 싶기도 합니다. 훈련소에서 받은 병사 수첩 가장 뒷 페이지에는 한국 지도가 붙어있어요. 운전 실습을 하지 않는 대기시간에는 다 같이 그 지도를 보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죠. 그래도 경기권에는 100% 갈 수 있어서 중부지방 지도를 보다 가끔씩 남부지방 지도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함께 여행을 갔던 생각이 나 미소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전주-남원-여수-순천-보성-광주-담양. 지도로만 보면 정말 짧은 거리에 정말 짧은 여행이었는데 어떻게 추억이 그렇게 많이 쌓였는지. 참 재미있는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도 달려보고 아직은 너무 차가웠던 바다에 발도 담가 보았었고. 한복을 입은 당신의 사진을 찍으며 대나무 숲 사이를 걷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 속을 같이 걸어가다 자연스럽게 발을 맞추고, 천천히 하늘을 뒤로하던 해를 보며 순천만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온갖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 서로를 바라보는 여행. 나는 정말 그 시간들이 좋았어요.
많은 연인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는 정말 추억을 쌓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웃음이 많아서 그럴까요. 우리가 아직 어리고 젊어서 그럴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거고, 다시 행복해하는 서로를 보며 행복해할 테니까요.
다음 시험 구간 실습을 다녀왔어요. 조금 실수가 있긴 했지만 실습 두 번 정도만 더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운전병으로 2년. 뭐 이제 정확히 2년은 아니겠지만 2년여의 기간 동안 운전을 하다 보면 확실히 운전을 잘하게 되어서 나갈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이제는 누나를 데리고 이 곳 저곳 더 쉽게 놀러 다닐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지금은 연약하고 예민한 가솔린 수동 승용차를 몰지만 나가서는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을 테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겠죠.
휴가 나가서, 아니면 전역하고 난 이후에 누나 데리고 차 태워서 여행 다니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주도 해안도로 같은 곳은 차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으니까요. 누나의 차멀미가 심한 게 문제지만 내가 운전을 더 연습하고 누나를 조수석에 태우면 조금 낫지 않을까 소박한 꿈을 가져봅니다.
누나는 차를 타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편지나 블로그에, 아니면 메모장에라도 적어보세요. 꼭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가도 되니까 내가 손 꼭 잡고 같이 데려가 줄게요. 그렇게 또 추억을 쌓고 웃고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거겠죠. 보고 싶어요. 면회가 이제 3일 정도밖에 안 남아서 다행이야. 곧 보니까 이만 편지를 마쳐보도록 할게요. 사랑해요.
2016.07.07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