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15
To. 엄마
어제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실습 평가와 필기시험이 끝났어요. 성적은 대충 우수합니다. 그 사이에 침구류 정리로 가점도 받아서 특기학교 성적은 무난 무난하게 나올 것 같아요. 이제 성적표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감점표를 지켜라' 게임을 즐기면 됩니다. 모든 평가가 끝나서 그럴까 마음도 좀 풀리고 긴장도 풀린 탓인지 몸이 많이 노곤해요.
오늘 오후에는 이발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요. 훈련단 때와는 다른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윗머리만 살짝 남기고 뒷머리랑 옆머리만 자를 것 같은데 (아직 앞머리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결과물이 어떨지는 여전히 미궁 속입니다.
어제부터는 병사 수첩 뒤에 있는 주소록과 연락처를 하나씩 채워 넣기 시작했어요. 사실 기훈단 때부터 하고 싶었는데 특기학교에 와서야 시작하게 되었네요. 연락처를 적어 넣고 생일을 적고, 간단히 주소를 적고. 참 단순한 일인데 묘한 재미가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약하는 일이니까요. 다가가 번호를 묻고, 생일을 묻고, "어디 가면 형을 만날 수 있어?"라고 묻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추억을 정리하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같은 호실 형에게 이 수첩을 들고 갔더니 "이거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는 소리구나"하더랍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방법들을 적어두면 언젠가 그리움을 다독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참 잘 느낄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하던 이름들을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고, 카톡으로 보내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편지지 위에 그리니까요. 아날로그는 모두 손에 닿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남아서 좋아요. 내가 이 수첩에 이름과 연락처 하나씩을 적을 때마다 내가 간직할 그리움이 생기네요.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 엄마가 이따금 연락처가 가득 적힌 수첩을 꺼낼 때 신기해했던 것 같은데, 이제 내게도 그런 수첩이 하나 생겼군요.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는 다시 책이나 읽을까 하고 있어요. 아직 시험이 안 끝난 친구들이 있어 대기를 하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을 시작했어요. 정말 오묘한 내용이라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빠져들어 보려고 하고 있네요. 평화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또 편지 쓸게요. 사랑합니다.
2016.07.15 아침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