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편지, 공군 군수 2 학교, 2016.07.20-22
To. 가족
군수 2 학교에서의 생활도 거의 끝나갑니다. 벌써 수요일. 내일모레면 자대도 결정되고 특기 학교 수료도 마쳐 모든 것이 마무리될 것 같아요. 마지막 주는 뭐랄까 차분하고 느슨합니다. 면회를 다녀오고 나서 오랜만에 영접한 자장면의 기름기에 장이 붕괴해 버리긴 했지만 바로 다음 날 초복을 기념해 급식으로 나온 삼계탕으로 기운을 차렸습니다. 군대에 와서 처음 받아 본 삼계탕이었는데 1인 1닭을 제공해주더라고요.
모든 시험이 끝난 후 수업 시간에는 훨씬 더 편안하고 실용적인 운전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오늘은 조교님이 에코 드라이빙이라고 내리막에서는 기어 중립 상태로 내려가며 연비 효율을 높이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운전병은 운전병이라고 다들 이제 이런 부분들에 눈을 빛내기 시작하네요. 이런 것뿐만 아니라 뉴스에서 차나 버스, 운전에 관련된 이슈가 나오기만 해도 다들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가요. 군수 2 학교에서의 4주가 꼬맹이 훈련병들을 운전병으로 만들어주긴 했나 봅니다.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군수 2 학교 117호실의 생활은 여전히 유쾌해요. 오늘 아침에는 21살 동생들 셋이서 치토스에서 나온 따조 팽이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며 29살 선생님 형이 "아 이런 순수한 것들이 나라를 지키다니!"라고 탄식을 내뱉으셔서 다 함께 웃었어요. 저녁에는 싱어송라이터 형이 호실 아이들 포카리 스웨트를 사주겠다고 10개를 한 번에 뽑았다가 자판기가 막힐 뻔하기도 했죠. 아직도 이런저런 해프닝 속에서 웃음기를 긁어모으며 행복한 군생활을 이어가고 있네요.
어제부터는 저녁 TV 시청 시간에 '리틀 포레스트'라는 일본 영화를 보고 있어요. 코모리라는 마을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기른 작물들로 주인공이 온갖 음식들을 만들고 먹는 영화예요. 화면의 색감이 정말 예뻐서 다들 넋을 놓고 봤네요. 연출도 세련되게 첫 번째 요리, 두 번째 요리 진행될 때마다 장면 전환을 차분하게 해내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보니 아직은 일본어가 잘 들리긴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군대에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삿포로의 지인들에게 연락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더랍니다. 사실 뒤늦게 떠올랐는데 군대에 들어올 때 가져온 동전지갑이 사토코 씨가 선물해주셨던 것이더라고요. 그런데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군대에 갔다는 외국인 친구의 소식은 무슨 느낌일까'하고요.
참 묘할 것 같아요. 의무 복무라는 것은 알지만 국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군인이란 위기의 순간에 적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니까요. 특히 일본은 지금 우방이라고는 해도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인만큼 '군인이 되었다!'는 그렇게 달가운 소식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나라도 조금은 왜인지 모를 어색함이 생길 것 같고, 말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것 같거든요.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이야이기인 것 같아요.
편지를 쓰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수료 하루 전이 되었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적 발표와 자대 원서를 쓰는 시간이 있었죠. 엄청 긴장되긴 했는데 성적은 예상보다 괜찮게 나왔습니다. 사실 예상 등수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던 참이라 그렇게 높은 등수가 아님에도 만족감이 높았어요. 운전 성적보다 별도의 근무를 맡았느냐 아니냐가 큰 관건인데, 알고 보니 그 근무자가 우리 특기에서 38명씩이나 된다고 해서 일찌감치 예상 등수를 낮춰두었거든요.
자대는 특기학교 등수와 기훈단 등수를 합쳐서 2분의 1로 나눈 최종 등수대로 우선권이 주어지는데 엄청 좋은 등수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등수라 1 지망, 2 지망, 3 지망을 모두 집 주변에 몰아넣었어요. 결과 발표는 내일 아침이라고 하는데, 조금 떨리네요.
훈련단 6주와 특기학교 4주. 10주의 진주 생활이 이제 드디어 끝이 보여요. 기분이 좋으면서도 살짝은 싱숭생숭하네요. 이제는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다음 주면 또 자대에 가서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한다고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재밌고 유쾌하게, 살아볼게요.
자대는 서울공항, 제 15 특수임무비행단 입니다.
2016.07.20-22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서울공항, 제 15 특수임무비행단은 서울 에어쇼 및 그 역할에 따라 언론을 통해 많이 공개되어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그 위치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어 브런치 상에서 언급했습니다.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기종과 임무 등 안보 위협 사안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