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편지, 서울공항, 2016.07.27-28
To. 모두에게
편지 쓸 시간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어 틈이 날 때마다 편지를 쓰고 있어요. 원래 신병의 삶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 편지가 늦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편지를 적어둘게요. 그 사이에 저는 무사히 공군 제 15 특수임무비행단에 도착했습니다. 특기학교 수료 후에 마음껏 휴식을 취한 터라 컨디션도 좋은 편이에요. 마지막 주말, 토요일은 대학 친구가 면회를 와주었고 일요일은 곧 헤어질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우리는 진주를 떠나 서울공항에 도착했어요. 첫인상은 뭐랄까, '엄청나게 크구나!'였던 것 같아요. 비행단 중에는 작은 규모라고는 하지만 (서산비행장은 아시아 최대 크기라고 하네요) 버스로 외곽을 따라 기지로 들어가는 곳을 찾는데, 그것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려서 비행단은 비행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안이 중요한 곳이라 그런지 공항 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해야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런 하이테크놀로지를 보니 눈이 부실 지경이었죠. 부대 안으로 들어간 후에는 간단한 수속 처리를 해야 했는데, 문서를 작성하고 나니 우리를 찾으러 온 수송대대 선임들이 도착해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다섯 명의 동기들은 수송대대의 일원이 되었죠.
다들 선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조금씩 있었지만, 첫날 받은 반가운 환영 덕에 그런 걱정은 전부 괜한 걱정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첫날 생활관에 입성하자마자 바로 윗 기수인 맞선임들과 12 기수(1년) 위인 아버지 기수 분들이 저희를 정말 다정하게 맞아주셨거든요. 아버지 기수들은 저희를 엄청 기다려왔다고 하시며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자기들 사진에 이름까지 적어서 주고 가셨고, 움츠러들어있는 저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시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셨어요. 맞선임들도 다 좋은 분들이셨는데, 한 기수 밖에 차이가 안 나니 너무 딱딱하게 지내지 말자고, 편하게 지내자고 하시며 매일매일 B.X 에서 봉지 가득 과자를 사주셨어요. 시간 날 때마다 먹는 데 아직도 과자랑 라면이 많이 쌓여있네요. 전통이라고 해요, 이렇게 맞후임한테 먹을 것들을 사주는 것이.
매일매일 일과가 끝나면 새로운 친구들이 궁금한 선임들이 많이 찾아와 말을 걸어주세요. 기수가 가까운 분들이 많이 오지만 아버지 기수보다 더 많이 차이나는 분들도 오셔서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일과 시간 수송대대에서부터 일과 후 생활관까지 하루 종일 선임들을 뵙다 보면 괜히 이곳이 인원수 120명의 15 특임비 수송대대인 것이 아니구나 싶어요. 다행히 너무 시간이 늦어지거나 친구들이 피곤해 보이면 아버지 기수 분들이 선임들을 다 쫒아내 주시기도 해서 큰 부담 없이 첫 주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좋은 곳으로 온 것 같아요.
어제는 처음으로 활주로에 나가보았어요. 비행단은 소위 '라인'이라고 불리는 경계를 기준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이 라인 안쪽이 바로 활주로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어제는 F.O 수거 작업이라고 혹시나 비행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물체들이 활주로에 있는지 확인하고 수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어요. 버스를 타고 활주로로 나가 작업을 했는데, 이동 중에 군 수송기들과 헬기들 심지어는 대통령 전용기인 '1호기'까지 볼 수 있었어요. 사실 '1호기'는 대부분 격납고 안에 주기되어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데, 운이 좋아서 보게 되었네요. 참 예쁘고 잘 만들어진 비행기였어요.
그리고 활주로에서 또 마음 설레는 것을 하나 더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성남시청이었어요. 활주로 주변은 큰 산도 없는 데다가 고도제한이 걸려있어 시야가 확 트여있어요. F.O 들을 수거하며 주변을 보는데 상당히 낯익은 건물들이 많더라고요. 활주로에서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저 뒤 어딘가에 집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당히 묘해졌어요. 정말 그때 내가 집 가까이 있다는 실감이 나더랍니다. 생활관에 누우면 제 2 롯데월드가 보인다는 사실에 놀랐었는데, 활주로에 오니 그 느낌이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지난번에 뉴스를 보다 광화문 광장이 화면에 나왔는데, 순간 '와 저곳보다 내가 더 집에 가깝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5 비 만세입니다.
지금은 생활관에서 영화를 보다 누나랑 통화를 잠깐 하고 편지를 마저 쓰는 중이에요. 조금 이따가는 점호가 있을 예정이라 금방 편지를 마쳐야겠네요. 선임들은 자대 오고 나서 편지를 쓸 일이 없다고, 생활관에 수신 전용이긴 하지만 핸드폰도 있고, 공중전화도 있어서 실컷 전화하다 보면 편지 쓸 일이 없다고들 해요. 그래도 저는 계속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마음을 담아 글을 적는다는 것, 좋으니까요. 또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는 소리가 들리네요. 잘 자고 또 내일 편지 쓸게요. 모두 좋은 밤 보내길 바라요. 사랑해요.
2016.07.28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서울공항, 제 15 특수임무비행단은 서울 에어쇼 및 그 역할에 따라 언론을 통해 많이 공개되어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그 위치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어 브런치 상에서 언급했습니다.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기종과 임무 등 안보 위협 사안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