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8.15
To. 가족
시간, 시간, 시간. 옛날에는 그렇게 많았던 시간이 조금씩 부족해지기 시작해요. 적응을 해서 시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줄어드는 이 미묘함. 아마도 내가 이 곳에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지만, 아쉽긴 하네요. 휴가를 다녀오고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마땅히 편지 쓸 여유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편지지를 펴 들었습니다.
돈부리 어땠나요? 아직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엄마 아빠가 일어나버려서 완벽한 우렁각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휴가 나오는 아들이 아침을 해줘서 기분 좋았죠? 6시 30분에 부대를 나서서 집을 가는데, 집 근처를 가니 이제 막 문을 연 분식집이 있어서 다행히 튀김을 살 수 있었어요. 휴가 나올 때마다 한 끼 정도는 내 몫으로 엄마, 아빠, 형한테 대접해주고 싶은데 다음 메뉴는 뭐가 될지 모르겠네요. 궁리해봐야겠어요. 부디 맛있는 생각이 떠오르길! 그래도 이번에는 엄마가 해준 밥도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맛있는 집밥. 생각해보니 다음 휴가는 추석이라 또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겠네요. 행복한 휴가일 것 같아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요.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일주일. 저는 이제 한자 공부도 좀 시작해보려고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노트에 정리하며 꽤나 생산적인 시간들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물론 시간이 그렇게 풍족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는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목표일이나 시험 날짜를 잡아두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제로 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12월 정도로 하면 적절할까 싶기도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바빠질지 모르니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려워요. 사실 상병을 달고 나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고민이 많아지네요.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광복절이라 생활관에서 나른한 휴식을 즐기고 있어요. 광복절. 군인이라서 더 특별하게 기념하고 그러는 것은 없지만 이 꿀맛 같은 휴식이 광복을 기념하는 거라니 기분이 좀 묘하긴 하네요. 지난주 금요일에 알게 되었는데, 광복의 의미가 '빛을 되찾았다'라는 의미라고 해요. 낭만적이기도 하고, 얼마나 기뻤으면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싶기도 하고. '빛을 되찾는다'.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말을 붙여줄 만한 일이 또 있을까요.
빛 속에서 태어나 자라온 우리가 이렇게 커서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때보다는 나았지.' '그 시절보다는 훨씬 더 좋은 환경이야',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가 그 시절의 빛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해봄직한 것 아닐까요. 즐거운 날입니다. 또 편지할 테니 엄마, 아빠도 태극기 걸어두고 즐거운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2016.08.15 - 아들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