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배치와 사진첩

서른세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8.13

by 김형우

To. 콩


어젯밤에 편지를 하나 마쳤는데, 조금 아쉬운 감이 있어 다시 펜을 잡았어요. 그래도 오늘 전화를 오래 해서 기분이 좋은데, 나는 오늘도 콩씨 덕에 행복한 주말 아침을 맞았네요. 짤막한 휴가를 보내고 일주일,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일병을 달기 전 마지막 일주일이었는데, 드디어 각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정해지기 시작했거든요.


나는 일반차량이 아닌 작전차량을 운영하는 중대로 가게 되었어요. 작전차량운영중대는 라인 안쪽, 그러니까 활주로 안쪽의 수송 업무를 맡는 곳인데 크게 조종사 출동차량 운전병과 항공기 견인차량 운전병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요. 원래 항공기 견인차량 운전병은 따로 특수차량 운전 특기병이 가는 곳인데, 일반차량 운전 특기병들도 항공기 견인차량 운전병이 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직 내가 조종사분들을 모시게 될지 비행기님들을 모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머지 군생활을 활주로 안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너무 급작스럽게 발탁된 거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공군다운 일이라 보람 있게 해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네요. 안타깝게도 영외를 나가지는 않는 중대라 누나를 데리고 드라이브하는 실력이 크게 늘 것 같지는 않지만 그거는 또 나중에 연습하면 되겠죠.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생활관에 들어오면 요즘은 기분이 정말 상쾌해요.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관물대 안을 완전히 새로 단장했거든요. 관물대를 열면 하루 종일 그 안에 모여있던 디퓨저의 향기가 퍼져 나와서 나를 반겨주고, 그 향기 뒤편에는 누나에게 보낼 편지지와 내가 좋아하는 책들, 그리고 당신 사진이 가득 담긴 사진앨범이 있어요. 옆에는 내 노트와 수첩이 있고, 자잘한 잡동사니들 두어 개까지 더해 작지만 나만의 공간 하나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음 휴가 때는 CD 플레이어와 내 CD 몇 장을 들고 와서 넣어두고 이따금 노래도 들을까 해요. 한 번에 하나씩 나의 것들을 챙겨 와서 이 작은 공간을 꾸며보려고 해요. 소박한 행복일까요.


보고 싶어요. 애틋하기보다는 조금 쾌활한 느낌으로 참 보고 싶네요, 내 연인이. 사진첩을 보다 보면 이런저런 추억들이 가끔씩 떠올라요. 벚꽃이 만개한 애기능 동산을 거닐 때도 기억나고, 같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놀러 갔을 때도 생각나고. 추억을 한 장씩 담아둔 이 사진첩 하나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왜 아이들 어릴 때 사진 많이 찍어서 앨범 만들어두는지 알겠다 랄까요. 다음 휴가 때는 누나 줄 사진첩 하나를 장만해볼까요? 누나는 핸드폰으로 볼 수야 있겠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 사진첩만의 느낌이 있더랍니다. 이 편지 받으면 어떤 사진 넣어둘지 고민해보세요.


지금은 애들이랑 드라마를 보면서 쉬고 있어요. 나쁘지 않은 하루, 나쁘지 않은 주말. 물론 바깥에서의 주말보다야 나쁘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휴일이에요. 편하게, 공부도 하면서 잘 지내볼 테니 우리 아가씨도 알찬 주말 보내주세요. 사랑해요.


2016.08.13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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