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편지, 서울공항, 2016.08.09-08.12
To. 콩
참 즐거웠던 휴가. 2박 3일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휴가였지만 정말 알찼던 휴가였던 것 같아요. 다시 부대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웠고, 마음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누나를 남겨두고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이런 아쉬운 이별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죠. 생각해보면 사는 거라는 것이 그렇게 복잡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낯설어지기와 익숙해지기. 그 둘 뿐이랄까요.
휴가를 나가기 전 날 침대에 누워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제 여기가 내 자리구나'라고. 가만히 누우니 이제 내 자리에서 조금씩 내 냄새가 나더라고요. 이불의 촉감도, 베개의 높이도, 매트리스의 느낌도 나한테 맞추어진 것 같은 미묘한 익숙함. 벌써 나는 이 곳에 익숙해지고 있나 봅니다. 이 공간에, 이 생활에, 이 사람들에. 적응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에요.
하지만 어딘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것들에 낯설어져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씩 바뀐 길가의 모습들, 어느새인가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는 추억의 장소들. 아무리 군대가 좋아져서 뉴스를 볼 수 있어도, 공군이라서 휴가를 자주 나갈 수 있어도 내가 원래 있던 곳들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죠. 익숙해지고, 낯설어지고. 생각해보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요.
걱정되는 것은 하나예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서로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 지난번에 특기학교에서인가 연인들이 왜 군대 때문에 싸우고 헤어질까 생각해봤는데, 물론 계속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짧은 휴가 속 데이트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군인은 휴가를 나가면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해요. 추억 속의 공간과 추억 속의 행동. 행복했던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멀어져 왔던 익숙함을 하나씩 되찾는 거예요.
하지만 사회에 남아있던 군인의 연인에게 그런 일상은 어제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르겠어요. 군인은 아무래도 새로운 것들을 찾고 조사하는 데는 불리하고, 옛날만큼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재미들을 찾아 나서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자기가 그리워하던 '이미 알고 있던 곳'들을 찾아 나서고 싶겠죠. 그래서 그런 데이트들은 '새롭지 못한 것'들로 느껴질지도 몰라요. 새롭지 못한 데이트에 권태를 느끼게 될 때 연인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다행히 우리의 데이트는 재미있고, 행복했고, 조금은 새로웠어요. 분당에서의 하루도 즐거웠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디뮤지엄에서의 데이트도 정말 좋았죠. 아주 조금의 노력. 당신과 나를 위해 서로가 준비해온 조금의 아이디어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하루들이었던 것 같아요. 낯설어지기 그리고 익숙해지기, 그 사이의 우리.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를 위해 새로운 것들을 열심히 찾고, 우리의 익숙함을 함께 즐기며 재미있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나의 연인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사랑하는 아가씨. 이제는 슬슬 바빠지는 남자 친구라 이 편지를 쓰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사이사이 시간을 내어 편지를 쓸 테니 행복하게 기다려주세요.
2016.08.09-08.12 - 너의 연인.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