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8.18
To. 가족
아니었어요. 괜찮지 않았어요. 어제는 정말 바빴습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쓰레기 배출이라는 것을 해봤는데, 지난 몇 주간 대대와 생활관에 모인 쓰레기를 9t 트럭에 다 모아서 쓰레기 배출장이라는 곳에 가져다 버리는 일이에요. 땡볕에 묵은 쓰레기들을 다 걷어다 모으는 일이 절대 달가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 못할 일도 아니라 열심히 해냈던 것 같아요. 이제 저희가 막내라 쓰레기 분리수거나 정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쓰레기도 너무 많고 쌓여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골치입니다. 원래는 청소 시간에 20분 정도만 쓰레기를 정리하면 되었는데, 어제오늘은 1시간도 넘게 치웠는데도 불구하고 남은 것들이 많아서 내일도 일찍 나와서 쓰레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평소에는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 않은데, 광복절 덕분에 3일로 길어진 휴일과 병장들의 제대 그리고 내무실 변경이라는 빅 이벤트 3개가 겹쳐 어마 무시한 양의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3일 동안 연휴라 왕창 군것질을 하면서 쓰레기가 많이 생겼는데 120명 아들내미 중 첫째부터 셋째가 이제 나가서 자취하겠다고 지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가버리고, 나머지 아들내미들이 다 같이 빈자리로 '나 이사할래!' 이러면서 이사하는 김에 쓸모없는 것 다 내다 버리는 난리를 치고 있는 판국이에요.
아 이 김에 내무실 변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네요. 오늘은 내무실 변경이라고 생활관 방을 한 칸씩 옮기는 이사를 했어요. 수송대대 생활관은 1 생활관부터 14 생활관까지 있는데, 막내 때는 1 생활관에서 시작해서 차례차례 방을 옮겨 14 생활관까지 가면 이제 전역을 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누군가 전역을 할 때마다 군번 순서대로 그 자리를 채우고, 가장 밑의 자리에는 새로운 신병을 받을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죠. 이 부대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도 얼떨결에 2 생활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막내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에요.
잠깐 또 막내일을 하고 왔어요. 요즘에는 뭐든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하고 다시 막내일을 하고, 또 막내일을 하던 도중에 새 일이 생겨서 그것도 하고. 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일과 중에는 중대에서, 일과 후에는 생활관에서.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많이 듣긴 하는데, 막내일이란 역시 고달픈지라 다들 눈에 초점을 잃고 좀비처럼 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어요.
어쨌든 그래서 우리 집 막내아들은 이 먼(사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막내 노릇을 해내는 중입니다. 하루하루 이야기해줄 일들이 많은데 편지를 쓸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아서 틈틈이 글을 쓰는 중이에요. 그 사이에 막내에게는 그 희귀하다는 딸기 몽쉘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군대에서 안 파는 물건은 있어도 군대에서만 파는 물건은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고요. 그 이름하여 딸기 몽쉘. 논산 딸기가 함유되어있다는 이 친구는 군대에서만 판매가 된다고 해요. 군대에서도 인기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제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들고나가볼게요.
또 오늘은 기지에 F-4 팬텀 전투기가 왔다 갔습니다. 랜딩 때는 보지 못했는데 이륙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엄청 소리가 크더라고요. 전투비행단 애들은 매일 저 소리를 듣겠구나 하니 조금 불쌍해졌어요. 어쨌든 이러쿵저러쿵해도 요즘은 정말 공군스럽게 매일을 보내고 있어요. 매일 활주로를 보며 아침을 맞고 또 활주로를 보며 퇴근을 하고. 재밌게 잘 지내고 있죠. 이제 슬슬 자야겠어요. 요즘 막내일을 시작하고 나니 왜 맞선임들이 그렇게 밤에 군것질을 했는지 알겠어요. 과자 하나 까먹고 자리에 누울게요. 사랑합니다. 또 편지할게요.
2016.08.18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