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8.30
To. 여자친구
왔어요! 왔어요! 후임이 왔어요. '벌써'라고 해야 할지 '드디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맞후임이 자대에 왔습니다. 나한테 경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요. 생태계의 바닥에 있던 우리에게도 드디어 후임이라는 것이 생겼군요. 한껏 경직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도 저랬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생활관에 수많은 선임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는데 한 달 전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지더랍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친구들한테 어떻게 해줘야 할까, 어떤 것들부터 알려줘야 할까 그런 고민들로 밤을 보내고 있어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알려준달까 이곳에서의 삶을 소개해준달까. 생각해보면 맞선임의 역할이라는 게 낭만적인 부분도 있는 것이었군요. 우리 맞선임들도 이런 고민을 하며 우리를 맞았을까요.
돌이켜보면, 신병 생활은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굴러 떨어진 것과 비슷해요.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알고 있던 것들과는 다른 것들로 가득한 세계. 아무리 상상했어도 , 맞닥트린 현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부분이 있더라도 새로운 곳은 낯설고 어렵죠. 잘해줘야겠어요, 후임분들에게. 아주 잠깐 동안은 조금이라도 군기 잡힌 선임의 모습을 보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적성이 아닌지라 포기했습니다.
내일은 식당 공사 때문에 하루 종일 차출을 갈 예정이에요. 원래 우리가 쓰던 식당에 공사할 일이 있어서 그동안 우리 밥을 먹일 작은 식당에 온갖 것들을 옮겨둔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중대가 달라져서 일과 중에는 보기 힘들었던 동기들도 같이 차출되었다고 해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고생이 예정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잘 다녀올게요. 사랑해요.
2016.08.30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