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9.16
To. 여자친구
달콤했던 일요일의 면회와 이어지는 연휴. 휴식은 언제나 반갑습니다. 다행히 추석 날에는 외출도 나갈 수 있어서 집에 다녀왔어요. 추석 음식도 먹고, 차례도 지냈고, 할아버지를 뵈러 현충원에도 다녀왔더니 그렇게 군인스러운 느낌도 없었네요. 재미있었어요. 오늘이 지나가도 주말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즐겁지만 이 꿀 같은 연휴가 막을 내리고 또 다른 하루가 저물면 드디어 우리가 막내를 졸업하게 된다는 것도 반갑기 그지없네요.
765기가 일병을 달다니! 부모님들은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것을 느끼신다는데, 우리는 후임이 일병을 다는 것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드디어 일개미가 되었구나 싶으면서도 너무 막내일을 고되게 느끼지는 않을까 해서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힘내서 즐겁게 시간을 버틸 것이라고 믿어요.
지금 시간은 밤 10시 50분. 밖에서는 한창 즐겁게 카톡을 하며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떠날 시간이네요. 이 곳에서는 이 시간이면 불이 모두 꺼지고 곳곳에 밤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해요. 요즘은 밤이 되면 다 같이 '셜록'을 보고 있어요. 생활관 IPTV에 다시보기로 서비스되기 시작해서 매일 밤 한 화씩 같이 챙겨보고 있죠. 누나와 카페에 앉아 넷플릭스로 셜록을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는 어느새 군생활 4개월 차의 일개미가 되었네요.
4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만큼의 시간을 달력에서 줄을 긋고 나서 드는 생각은 '빠르다'였던 것 같아요. 군대에 오기 전에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일까 걱정이 되었었는데, 지금 느껴지는 시간은 정말 벅찰 정도로 빨라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에요.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어떤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지. 때로는 그런 생각을 놓쳐버릴 정도로 시간은 무정하게 우리를 앞질러 갑니다.
이렇게 편지 쓸 일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져요. 애써 지나간 시간들을 붙잡고 기억하며 정리하는 순간들이 되어주기도 하거든요. 이 시간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할 텐데, 누나 덕에 나는 이 편지들로 내 추억들을 남겨두게 되겠네요. 밤이 깊어서 이제는 나도 잠에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곧 또 편지 쓸게요. 사랑해요.
2016.09.16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