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서(B.A.T)

마흔한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09.17

by 김형우

To. 나의 아가씨


하늘을 보며 사는 삶이란! 아침까지 내린 소낙비가 씻어 내린 가을 하늘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공군으로 들어와 아 내가 공군이구나 하는 느낌은 솔직히 매일 느끼곤 하지만 (매일 비행기 바로 옆에 있는데 못 느낄 수는 없겠죠?)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시야의 반을 뻥 뚫린 하늘이 차지하고 있는 비행단의 풍경이 아닌가 싶어요. 탁 트인 활주로. 산과 건물들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풍경 속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인 것 같기도 하네요.


오늘은 휴가를 나간 동기 대신 활주로로 일을 하러 다녀왔어요. B.A.T 혹은 빼트라고 부르는 일인데 활주로에서 비행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조류들을 쫓아내는 일이에요. 항공기는 언제나 이륙과 착륙 시가 가장 위험한데 이때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면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모든 공항에는 이런 B.A.T 활동을 위한 팀이 구성되어 있다고 해요. 평소에는 하늘로 쏘아져서 펑! 소리를 내는 폭음탄을 가지고 근무를 하지만 오늘은 비행이 거의 없는 연휴인지라 폭음탄 대신 확성기를 가지고 활주로에 나가게 되었어요. 새들이 싫어하는 소리가 녹음된 확성기도 신기하긴 했지만 폭음탄을 쏴보고 싶어 조금 아쉽게 되었죠.


B.A.T 활동은 활주로 한가운데 있는 녹지에서 진행을 해요. 택시 웨이, 그러니까 비행기가 다니는 길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지만 이 택시 웨이와 이착륙용 활주로 사이에는 잔디밭이라고 해야 할까 풀떼기들이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B.A.T 팀의 차량을 타고 각자의 근무 공간으로 이동을 하는데, 아무리 작차중대가 라인 안에 있다고 해도 아직 근무를 하는 인원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활주로 가까이 간 적이 없어 설렜습니다.


근무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B.A.T 를 위한 자동 포탑 같은 장치도 있는 데다 학습에 의한 것인지 새들도 그렇게 많이 활주로로 넘어오지 않거든요. 활주로에 놀러 오는 것은 거의 다 까치입니다. 역시 영악한 놈들이라 폭음탄과 확성기 소리가 위협용이라는 것을 아는 것인지 가끔 놀러 오더라고요. B.A.T 요원은 새들이 가까이 올 것 같으면 확성기로 쫓아내기만 하면 되었어요. 초지에 서서 맑은 하늘을 보고, 깨끗하게 펼쳐진 활주로를 보고. 그리고 우리가 정리한 활주로에서 공군의 항공기가 이륙을 하면 그렇게 이륙 시 B.A.T 활동은 끝입니다.


햇볕이 강하긴 했지만,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많이 지루한 감이 있어 매일 하게 되는 친구들은 조금 고생스럽겠지만 이렇게 잠깐 와서 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더라고요. 물론 항공기가 이륙을 하고 나서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길래 확성기로 열심히 SOS 모스부호(뚜뚜뚜 / 뚜-뚜-뚜- / 뚜뚜뚜)를 외쳐보긴 했지만 썩 괜찮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럴 때 보면 참 공군 하길 잘했죠?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일이 있을까요. 공군에 오게 되면서 육군보다 3개월이나 길다는 점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즐거워서 공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워낙에 비행기를 좋아하기도 했고, 활주로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전역이 20개월이나 남아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정말 기분 좋은 날입니다. 아가씨도 오늘 행복했나요?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합니다, 또 편지할게요.


2016.09.17 - 연인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기종과 임무 등 안보 위협 사안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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