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터그와 늘어진 군생활

마흔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0.19

by 김형우

To. 콩


익숙해진 것일까요. 절인 배추처럼 축 힘이 빠져 늘어져버린 것일까요. 요즘은 뭔가 파도 위에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군생활 위에 둥둥 떠밀려 다니는 느낌입니다. 편지 쓸 시간도 좀처럼 없고, 여유도 없는 것 같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하려나. 군생활이 쉬워지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은 이 기분.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가씨.


지난주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대대 회식이라고 해서 다 같이 삼겹살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는 행사도 있었고, 그 직전에는 다 함께 산책 삼아 탄천에 나갔다 오기도 했네요. 이런저런 지침들 때문에 단독근무는 아직 못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 밀터그 OJT가 끝나 상번 테스트에도 합격했답니다. 밀터그는 항공기 견인차(큰 터그)보다는 작은 견인차예요. 이 작은 견인차는 항공기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들을 이곳저곳에다가 배달을 해주는 차인데, 항공기 정비용 추가 조명에서부터 전원장치, 유압 조절장치, 액체산소 캔 등 임무 보조 장비들을 끌어주는 일을 해요.


참 힘은 좋은데 승차감 같은 것은 고려할 기준에 아예 포함되질 않은 것인지 활주로 같은 평지에서도 상당히 덜컹거리는 이상한 차예요. 그래도 차 하나를 잘 다뤄서 혼자 근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기분이 좋네요. 9월, 10월에 교육 과정이 조금 수정되어서 내가 단독 근무를 하려면 두 달 정도가 더 필요하게 된 바람에 혼자 차를 몰고 돌아다닐 수는 없겠지만 곧 혼자 차를 몰고 뽈뽈 돌아다니게 될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었고 드라마도 하나 끝까지 정주행 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면 잘 살고 잇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뒷목이 개운하지가 않은 것일까요.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처방전을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아가씨에게 가야 하는 것 같은데 언제쯤 갈 수 있을까요.


사실 생각해보니 지난주에는 엄마한테 전화도 한 통 못 해 드린 것 같네요. 편지를 종종 쓰고 있어 나 혼자는 엄마, 아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요. 조금 죄송스럽더라고요. 금방 휴가이긴 하지만 반성하면서 머리를 좀 비우고 옛날처럼 잘 해야겠어요. 해이해진 것일지, 지친 것일지. 조금 더 마음을 다잡고 살아봐야겠네요. 내가 잘할 수 있겠죠 아가씨? 내일은 좀 개운한 하루였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다. 사랑해요 아가씨.


2016.10.19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서울공항, 제 15 특수임무비행단은 서울 에어쇼 및 그 역할에 따라 언론을 통해 많이 공개되어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그 위치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어 브런치 상에서 언급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차들이 바로 밀터그입니다. 참고하시라고 이미지를 골라왔어요.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기종과 임무 등 안보 위협 사안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가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활주로에서(B.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