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16.05.21
To. 가족 + 콩씨(애칭)
입고 들어온 옷가지와 신발들을 보내는 택배에 편지 한 장을 넣어 보낼 수 있다고 해서 급하게 편지를 써요. 시간이 없어서 모두 함께 나누어 읽어줘야겠네요. 엄마는 내 폰으로 누나한테 이 편지 좀 사진으로 보내주세요. 보내는 방법은 뒷장에 따로 설명해 둘게요.
일단 저는 다사다난한 환경에서 무난 무난하게 첫 일주일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공군은 입대 후 일주일 동안은 3차 전형이라고 이런저런 추가적인 테스트를 하는 기간이 있다고 하네요. 이 마지막 테스트에서 탈락한 애들은 집에 돌려보내지고 그 후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고 해요. 힘든 훈련은 없었지만 17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돌아다니면서 차례대로 검사를 받으니 대기시간으로 하루가 다 가고 있어요. 땡볕에 앉아 있다 서있다, 그늘에서 앉아 있다 서있다 하니 일주일이 스르륵 가버리고 벌써 첫 주말이 왔네요. 어쨌든 저는 잘 살아남아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훈련병이 됩니다. 검사가 끝나고 150명 정도의 친구들이 짐을 싸고 떠나게 되었는데 그걸 보면 그래도 내가 건강하긴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조금은 과하게 건강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나도 '건강소대'라고 불리는 건강한 통통이들이 모인 소대로 편성이 되었거든요. 건강해 보이긴 해도 무게가 좀 나가다 보니 그런 것일까요. 조금 더 체중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니 나갈 때 즈음이면 살이 많이 빠져있을 것 같아요. 사실 감량 1위라는 타이틀도 있어 순간 욕심이 나긴 했는데, 체중이 100kg 도 넘는 다부진 친구들이 정말 많아서 1위는 포기하고 조금 더 건강하게 관리하고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고요. 조금만 다이어트해달라고 하던 우리 누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일까요.
또 하나 좋은 소식이라면, 역시 통통이들이 다들 착하고 귀엽다고 호실 친구들이랑 벌써 친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런 친구들일수록 겁도 많고 눈치도 빨라서 앞으로 그렇게 많이 혼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다음 주는 특별입영병영생활(이게 맞는지 모르겠네요)이라고 무지하게 구르고 구르는 무한의 햄토리 주간이라고 하는데 다들 잘할 수 있겠죠? 편지를 쓰다 보니 글씨가 조금 작아져서 글씨 크기를 조금 더 늘려야겠어요. 아무리 글씨를 잘 쓴다지만 글씨가 조그마하면 엄마 아빠가 보기 힘드니까요.
일주일밖에 안 되긴 했지만 다들 나 없는 일상이 재미가 덜하고, 허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다들 금세 재미있는 딴짓거리들을 찾아주겠죠? 사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은 큰 걱정이 없는데, 우리 아가씨는 좀 많이 힘들 것 같아 걱정이에요. 편지를 쓰는 오늘이 매주 데이트를 하던 토요일이라 더 그렇긴 한데, 어제는 나도 마음이 조금 찡하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여기서 누나 사진 하루에 대여섯 번씩 보면서 잘 버티고 있으니까 누나도 잘 버티고 있어주세요. 사실 내가 2, 3년쯤은 거뜬하게 기다릴 만한 매력남이라 더 힘들지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어린 남자 친구를 만나버린 걸. 처음 사귀고 돌아다닐 때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찍으면 "청소년입니다." 했던 것 기억나요? 추억을 떠올리며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아 그리고 오늘은 나라사랑카드 관련 교육을 받고 적금도 신청하게 되었어요. 처음 신체검사를 받고 만들었던 신한은행 대신 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새로운 사업자가 되었는데, 형이 약 오를 정도로 혜택이 좋아져서 국민은행으로 나도 바꾸게 되었어요. 적금은 월 10만 원 한도인데 이율이 5.8%나 된다고 하네요. 전역하기 직전에 갱신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이리저리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아직 사격이나 유격이나 앞으로 할 훈련만 있지 지금껏 한 훈련이 없어서 조잘조잘 편지에 써줄 게 없네요. 그래도 이 쪼그만 글씨로 이 종이 한 장 빽빽하게 채운 거로 만족해주세요. 시간에 쫓기며 쓴 편지라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소식 업데이트는 편지를 쓸 수 있는 데로 열심히 해줄게요. 나는 지금 매분매초 돈 버는 느낌으로 아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제 5주도 안 남았으니 다들 함께 힘 내주길 바라요. 엄마, 아빠, 형, 그리고 우리 콩. 사랑해요.
p.s. 들어오고 나서 머리를 엄청 짧게 깎였어요. 수료 전에 한 번 더 자르고 나간다니까 스님 스타일의 형우도 다들 볼 수 있겠네. 사실 종교 소개를 받으러 절을 다녀왔는데 스님이 우리보다 머리가 기시더라고요. 자기는 그래도 검은색으로 보이긴 하신다며 우리를 놀리시더라. 이만 편지를 접어 보낼게요. 다들 사랑해요.
2016.05.21 - 아직 멀쩡한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