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2016.05.31-06.02
To. 가족 + 콩씨
다들 첫 번째 편지가 의외로 알차서 놀랐나 봐요. 엄마는 형이랑 다르게 편지 쓸 시간이 많았나 궁금해하던데, 사실 저도 20분 남짓 되는 시간밖에 없어서 조금 급하게 적었어요. 지금부터는 사이사이 되는 대로 편지를 적으려고 하는데, 일단은 언제 시간이 날 지 몰라서 이번 편지도 4인용 형우 소식지로 써야 할 것 같아요. 소식지를 쓰고 틈이 나는 대로 바로 우리 아가씨용 편지를 쓸 테니 부디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어쨌든 벌써 훈련 2주 차 화요일이 되었어요. 내일이 바로 6월이라고 생각하니 시간이 참 빠르죠. 드디어 가장 힘들다던 '특병(특별입영병영생활)' 기간이 끝나고 이런저런 훈련들로 가득한 훈련병 라이프를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 후부터 첫 주에는 아침에 1.5km씩 아침 구보를 뛰기 시작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3km로 늘려서 구보를 뛰고 있어요. 800km 순례도 했었고, 두 다리로 뛰어다니는 것은 자신이 있어서 큰 무리는 없었는데 덕분인지 금요일에 있었던 개인별 체력측정에서는 소대에서 7등을 하기도 했어요. 오늘은 아침 구보 3km에 이어서 오전에 전투뜀걸음이라고 3km를 전투복 차림으로 뛰는 훈련이 있어서 조금은 헤롱헤롱 했지만 그래도 낙오 한 번 없이 뒤처지지 않고 수월하게 훈련을 받은 것을 보면 튼튼하긴 한 것 같아요.
사실 몸이 쑤시거나 아픈 것은 훈련보다는 이리저리 구를 때라 특병 기간이 끝난 지금은 몸이 아프진 않네요. 아 혹시나 군대에서 먹는 밥을 걱정할까 봐 말을 해주자면, 나는 꽤나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언제나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밥의 맛없다는 이미지의 반은 그냥 군대이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 같달까요. 삼시세끼 고기 비슷한 것도 나오고, 은근 다채로운 식단이라 뛰어다니다 와서 먹으면 먹을만합니다. 최대한 무던하게 나름의 미식을 즐기고 있어요. 하나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파프리카와 오이겠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 두 친구가 은근 군대밥에서 자주 등장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엄마와 콩씨의 부던한 설득과 따뜻한 강요를 귀 기울여 들었던 덕에 과감히 이 친구들을 받아들였긴 한데, 아직 진정한 친구는 아니고 전략적 제휴관계 정도가 한계인 듯 싶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 대 오이/파프리카 협상에 성공한 것이 어디예요.
우리의 건강소대 친구들은 함께 열심히 다이어트에 임하고 있습니다. 매일 운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함께 먹는 양도 줄이고 가끔 주는 과자(이 곳에서는 감미품이라고 해요)도 거의 안 먹고 반납을 하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컵라면도 나누어줬는데 그것도 많이들 안 먹은 것을 보면 다들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 같네요. 물론 나도 동참 중이라 살이 은근 많이 빠져서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이어트하느라 힘들긴 하겠지만 착한 아이들이라 다들 긍정적인 태도로 지내고 있어요. 아,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은 조금 고생하고 있긴 하네요. 엄마 아빠는 어디서 우리 호실 친구들 사진을 봤는지 내가 어려 보인다고 하지만, 88년생 선생님이랑 92년생 형님 빼고는 다 나랑 동갑이거나 어린 친구들입니다.
6월 1일부터는 인터넷 편지와 그동안 온 손편지들을 나눠줬어요. 엄마는 도중에 하루 빼먹었다고 내가 실망했을까 봐 걱정한 것 같은데 전혀 그러지 않았으니까 괜한 걱정은 말아주세요. 일단 편지 읽을 시간이 많지도 않고, 엄마 손편지랑 친구들 손편지도 받아서 호실에서는 편지 수가 1등이랍니다. 엄마, 아빠, 누나 모두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제 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밖에서 다들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가 궁금해요. 형은 여전히 바쁘고 성실하게 잘 살고 있을 거고, 엄마는 그새 조금 아프셨다고 하지만 수영도 다시 시작하신 것 같고, 아빠는 여전히 열심히 야구를 보고 있겠죠. 우리 아가씨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하다 아마도 문득문득 내 생각이 나서 서글퍼질지도 모르겠어요.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내고 있어주길 바라요. 그래야 내가 나가서 더 예뻐해 주지. 엄마 아빠는 나 뉴질랜드에 다녀왔을 때 경험이 있어서 괜찮을 텐데, 누나는 많이 어색하고 불안할 것 같아요. 그래도 누나도 남자친구 잠깐 여행 보낸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주면 안 될까요. 다이어트 여행! 6주 동안 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건강하고 예뻐진 모습으로 나갈 테니 힘내서 기다려주세요.
지난주에 있던 어떤 교육에서 들었는데, 공군에서 보내는 2년이 사실은 인생에서 2~3%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죠? 그것도 조금 아깝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하는 것 나는 싱글싱글하면서 보내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곧 편지를 낼 생각이라 주말에 다녀왔던 종교 참석이랑 첫 훈련들에 대해 조금 더 글을 써볼까 해요. 첫 번째 종교 참석 때는 친구들이랑 함께 기독교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함께 불교를 다녀왔어요. 소문대로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워서 놀라웠죠. 그래도 최근 바깥 세계의 뉴스도 알려주고, 노래도 틀어줘서 기분 전환하기에는 좋았던 것 같아요. 의외로 과자를 나눠주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하네요!
차츰차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돼서 6월 2일에는 드디어 사격훈련을 하고 왔어요. 총의 조준점을 개인에 맞게 조절하는 영점 사격과 점수를 기록하는 기록 사격이 있는데, 기록 사격에서 나는 20발 중에 13발을 맞추었어요. 형은 거의 다 맞췄던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네. 소리가 크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의외로 소리에 놀라지는 않았고, 한발 한발 쏠 때마다 눈에 화약이 들어가는 게 문제였어요. 20발을 다 쏘고 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물어보니 내 총이 조금 낡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해요. 기훈단에서 쓰는 총은 대부분 낡은 총이랍니다.
편지를 낼 시간이 돼서 이만 글을 줄일게요. 엄마는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 콩이에게 편지 좀 보내주세요. 엄마, 아빠, 형 사랑하고, 우리 콩씨는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곧 다음 편지 보내줄게요.
2016.05.31 ~ 2016.06.02 - 형우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