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뉴스들

마흔네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1.03 / 11.05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해뜨기 전에 눈을 뜨는 것은 역시 힘겨워요. 어제까지만 해도 휴가를 즐기던 내가 부대에 있다니. 휴가는 아무리 길어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음 휴가는 언제이려나, 그때도 재밌는 일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네요.


내가 추위를 몰고 휴가를 다녀온 것일까, 오늘은 아침부터 낙엽을 쓸었어요. 한참을 쓸었던 것 같은데 점심 즈음되니 다시 소복하게 은행잎이 쌓여있어서 한번 더 빗자루를 들었네요. 하늘에서 은행잎이 우아하게 돌면서 떨어지는데 와 이게 바로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휴가 나가기 전에는 은행이 왕창 떨어지더니 이제는 은행잎이라니. 은행 저 친구는 벌레 안 꼬이고 조금 예쁜 것 빼고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군요. 냄새나는 쓰레기가 떨어지더니 이제는 알록달록한 쓰레기가 떨어지네. 곧 있으면 하늘에서 새하얀 쓰레기가 내리겠죠? 일병을 막 달았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운전 특기가 아니라 청소 특기일지도 모르겠네요.


2016.11.03



정치적 중립성. 기훈단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말인데 요즘 부쩍 그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집회 혹은 시위에 참가하지 말아라. 그 주변에도 가지 말아라. SNS 상에서 군과 관련된 사항을 언급하지도 말고 그 어떤 정치적 의미가 담긴 언행을 금하라. 너희는 개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군인은 정치적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하며 따라서 군은 정치적 성향을 가지거나 표현해서는 안된다. 옳은 말이고 군인의 명예로운 의지가 담긴 말인데 요즘에는 그 말이 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까지 시위에 참여한다고 세상이 기특하다.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이야기들을 해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란 역시 기특해 보이긴 하죠. 때로는 그 아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때와 지위를 찾아가는 동안 헤쳐나가야 할 현실이 떠올라 입맛이 쌉싸름합니다. 정치는 이상주의가 필요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적 방법으로는 득세하기가 쉽지 않은 장르인 것 같아요. 등단이 쉽지 않은 이 곳에 마음에 강직함을 품고 나아가는 친구들이 계속 있어주었으면 하지만 혹 이 친구들이 과감하지만 옳지 않은 길을 걷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이들을 도와줄 댄디한 멘토가 우리들에게 있을까요. 부디 우리 세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왕이면 먼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꿔주길 바라며 뉴스 기웃거리기를 마쳐야겠네요.


아가씨, 우리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죠?


2016.11.05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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