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마흔아홉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1.26

by 김형우

To. 콩아가씨



빨래를 하는 날이에요. 오늘은 아침부터 이불 빨래에 나섰어요. 그다음에는 전투복, 그다음에는 다른 옷들. 오늘은 세 번이나 세탁기를 돌렸네요. 눈이 부시지 않는 맑은 햇살 속에 눈까지 퐁퐁 떨어지는 토요일. 향기롭게 깨끗해진 옷들과 건조기까지 돌려서 보송보송해진 이불이란 너무 기분 좋아지는 소품이죠. 전화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새로운 매트리스는 정말 최고예요. 군인에게 라텍스라니, 시범운영이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놀랐어요. 전군 중에 일단 우리 대대 100명만 먼저 사용해보고 다른 부대로 적용할지 말지 결정을 하신다고 합니다. 세 번 접히는 스펀지 매트리스가 당연해 보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라텍스라니, 참 흥미롭고 운이 좋은 군생활이에요.


내일은 외출, 누나를 보러 나들이를 다녀올 거예요. 지난번에 이야기한 따끈한 토마토 파스타도 먹고, 영화도 보고. 조금 더 느긋하게 함께 책도 읽고 귤도 까먹는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싶지만 이번에는 짧은 하루의 외출이니 가뿐하게 놀고 돌아와야 할 것 같아요. 다행히 다음 주가 바로 휴가라 너무 아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언제나 둘이 함께하는 시간은 짧게 느껴지곤 하니까요.


아, 오늘은 도서관에서 '국부론'을 빌려왔어요. 스미스 아저씨의 참 오래된 책인데,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이 언급하고 인용할 때가 많아 마음에 걸려 결국 집어오게 되었네요. 믿길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생활관에서 정치와 경제를 논하는 학구적인 토론의 장이 열리곤 해요. 사실 군대에 와서 이런 심오한 학문적 논박을 주고받을 줄은 몰랐는데 가까운 기수 친구들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똘똘한 친구들이 있어 재미있는 해프닝이 가끔씩 벌어지고 있네요. 지적 대화란 언제나 흥미로워서 계속 이런 자리가 생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벌써 밤이 깊었군요. 사랑스러운 아가씨는 지금쯤 자고 있을까요? 밤, 밤. 보드라운 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6.11.26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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