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편지

마흔여덟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1.12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오늘은 광화문 쪽에서 엄청나게 규모가 큰 집회가 있었다나 봐요. 다른 채널을 보느라 뉴스는 끝부분만 보긴 했는데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비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아주 우아한 시위였다고 해서 놀랐어요. 성숙하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일련의 사태들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우아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우아한 시민 정치인. 달갑지 않은 일로 시작되긴 했지만 그동안 밖으로 나서지 못했던 그런 우아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서주신 모습은 참 보기 좋더라고요. 조금 설렐 정도로요. 그곳에 같이 있고 싶은데, 같이할 수 없다는 것이 좀 아쉽네요.


오늘 밤은 유난히 토마토소스가 먹고 싶은 밤이에요. 적당히 달콤하고, 새콤한 향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토마토소스.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다가도 그 위에 올려둔 차가운 생치즈에 맛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그런 느낌의 파스타가 먹고 싶어요. 과하지 않은 올리브유에 따뜻하게 데워진 식기. 버섯이 들어가 있어도 좋을 것 같네요. 식감이 잘 살아있는 양송이에 부드럽게 익혀진 양파를 얹어 토마토소스와 함께 먹으면 어떨까요. 군침이 흐르는 밤, 다음 휴가에는 함께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먹으러 가볼까요?


매일 전화하지만 채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 편지를 적어요. 한 시간 넘게 전화하는 날도 많은데 이렇게 편지가 가득 차는 것을 보면 내가 당신에게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가 봐요. 아마도 전화할 때는 당신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작고 소소한 당신의 하루를 듣고 싶어서 귀 기울이느라 바빠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내일부터는 훈련이 있다고 해서 훈련 시작하기 전에 얼른 편지를 부치려고 해요. 통통한 편지봉투. 이 편지들을 받으면 이번 주도 행복하시려나요. 다들 어떻게 그렇게 계속 편지를 쓰냐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편지 써주는 것이 참 즐겁네요. 또 천천히 글을 모아 편지지를 가득 채워둘 테니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2016.11.12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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