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네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2.18
To. 엄마, 아빠
나쁜 녀석의 전역식, 아니지 나빴던 녀석의 전역식이란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죄송합니다 와 때 묻은 원망의 쑥스러운 공방전. 그때 왜 그랬을까 모르겠네 한 스푼과 더 나쁜 녀석들이 시켰었어 한 스푼. 답답하고 억울했던 만큼 쿨하지 못한 사람들과 그래도 그 못난 기억들을 삼키고 떠나려는 사람이 맞선 이 미운 정 가득한 전역식이 왜 그렇게 풋풋해 보이던지.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이 아니라 이들이 어떤 안 좋은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지는 못하지만, 이 날의 풍경은 참 인상적이었어요. 한 부대의 최선임이었던 사람들이 한껏 힘이 빠져 멋쩍게 웃고 있는 한편 많은 사람들이 그 이들을 찾아와 그 주변에 이리저리 걸터앉아 어색한 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는 모습. 서로 그렇게 행복한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기에 축하도 사과도 원망도, 그 어느 하나도 시원하게 해내지 못하고 어정쩡한 대화를 나누는데, 참 그 분위기라는 것이 묘했거든요.
물론, 그 녀석 꼴도 보기 싫다고 얼굴조차 안 내비치는 분들도 있었지만 마지막인데도 차마 모질게 원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임들도 신기했고, 항상 얼굴에 박혀있던 못된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꿈에 부풀어 설레 하는 전역자의 모습도 나름 신선했어요. 군이라는 조직에 묶여 계급과 기수에 따라 각지게 쌓아두었던 이들이 아직 어리고 미숙한 진짜 모습들을 보여주는 날이었달까요. 특히 전역자들의 눈은 정말 아이 같은 감상이 묻어있어서 군대에 오기 전에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었어요.
전설처럼 들려오는 악행들을 결코 모른 체 해줄 수는 없지만, 막내로 시작해 나름 경험과 시간이 쌓여 병장이 되고 나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해봤다는 녀석들에게서 언뜻언뜻 새어 나오는 소년 다움이 나는 좋기도 하더랍니다. 2년이 지나도 우리는 아직 어린척하는 어린이인 것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못된 녀석의 전역식. 나빴던 녀석의 전역식.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진심으로 축하받을 수 있는 전역식에 가보고 싶어요. 침묵으로 보낸 이별 뒤에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상처들이 꽤 많이 남아있더라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삶을 꾸려나가고는 있지만, 간혹 비치는 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면 다들 참 힘들겠구나 싶어요. 해야만 하는 일이고 보내야만 하는 시간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함께 잘 살아가다가 웃으며 반갑게 보내주는 날이 왔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