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에서는

쉰세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6.12.10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어제 썼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쓸 시간이 부족해 넘겼던 편지를 마저 쓰려고 해요. 내가 군대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사이에 한국은 또 하나의 소중한 문장을 역사 속에 남겼네요. 탄핵 개표 방송. 방 안에 있던 모두 빠짐없이 개표 방송을 지켜보았는데, 방송을 뒤로하며 우리는 여전히 이 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아야 하고 또 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 쓸쓸해했습니다. 정말 인생에 단 한 번 밖에 없을 해프닝인데, 이 일을 이렇게도 조용하게 침묵하며 보내고 있는 우리. 아쉽지만 이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라는 것에 위안을 얻어야 할까요.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아주 흔한 사회적 고질병. 한국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아주 뜨거운 열병을 앓으며 이 고질병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쉬운 일은 아니겠죠. 이렇게 말하는 우리도 아직 '너 없으면 안 돼'보다는 '너 하나 없어도 세계는 잘 굴러갈 거야'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는 어른이들이고, '어느 것이 옳다' 보다는 '어느 것이 더 맛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익숙한 식도락가들이니까요. '우리가 알아야 하고,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아직은 너무 낯설고 어색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다 같이 모여 당연하다는 듯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어떤 동기가 되어주었으면 해요.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정치적인 참여를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권유라 해야 할까 '왜 시위에 참여하지 않으시나요?'처럼 묻는 것도 아주 조금이지만 폭력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처럼 들려 꺼려지거든요. 하지만 이런 멋진 일에 함께하자고 할만한 동기가 있다면 조금 더 편하게 부탁하고 물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일이 그런 동기가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그때'처럼 한국을 같이 바꿔보지 않으실래요?라고 물을 수 있는 일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얼른 잠에 들어야겠네요. 다음 휴가 때는 누나 생각을 좀 들어보고 싶어요. 들려줄 수 있나요? 사랑해요.


2016.12.10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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