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예순두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1.08

by 김형우

To. 콩 아가씨


해가 다 지고, 정말 칠흑 같은 밤이 내린 활주로는 낮의 활주로와는 많이 다르더랍니다. 생각보다 더 어두웠지만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고, 또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했어요.


활주로를 따라서 움직이는 비행기는 의외로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오늘 비행 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아 가만히 주기되어 있는 비행기들도 익숙지 않은 밤에 마주하면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어요. 역시 군부대는 밤에 봐야 제 맛인 것일까요.


어제는 야간비행을 끝내고 처음으로 심야 비행 지원에도 나섰어요. 새벽에 고생한 비행기가 이리저리 아프기까지 하다고 해서 평소에 들어가는 집이 아닌 조금 더 큰 격납고에다가 잘 넣어주고 왔습니다. 12시를

훌쩍 넘은 새벽에도 이렇게 때때로 토잉이 필요한 일이 있어 불려 나가게 되곤 한다고 해요.


시린 겨울, 성에가 낀 창문을 녹이고 손에 입김을 불며 차가운 핸들을 잡아야 하긴 하지만 이 새벽은 참 고요하고 좋아요. 푸른빛의 어프로치 라이트를 따라가 가만히 착륙하는 비행기를 기다려 토잉을 하면, 마지막 항공기가 내려 모든 빛을 꺼둔 새카만 활주로 위를 달리게 되기도 하죠. 잠이 든 활주로. 재미도 재미지만 나름 낭만이 있는 작업이라 매번 기분 좋게 돌아오고 있네요. 모두가 자는 시간에 일할 때는 또 뭔가 내가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뿌듯해지기도 하고요.


답답하던 마음이 활주로 위에서 조금씩 낫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지금은 집으로 돌아온 비행기를 토잉하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핸들에 편지를 올려두고 글을 마저 적는 중이에요. 활주로에서 쓰는 편지. 근무를 하게 되면서 전화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서 당신에게 많이 미안한데, 이렇게라도 편지에 내 시간을 담아 보내니 조금만 참아주길 바라요. 또 편지할 테니 그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기다려주세요. 사랑해요.


2017.01.08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서울공항은 그 역할로 인해 언론 노출이 많아 일부 근무 내용을 브런치 상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임무나 보안 사항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통해 관리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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