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세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1.12
To. 콩 아가씨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 지는 날이었고, 사실 그런 날은 자주 있었고. 그렇게 3년 가득 너를 좋아하고 3년 가득 너를 사랑한 오늘. 나는 이렇게 당신을 위한 글을 씁니다.
해가 아직 높이 떠오르지 않은 시간. 비스듬한 햇살이 손끝과 글씨를 적어내는 펜 끝을 향할 때 즈음. 이럴 때는 마치 한 글자 한 글자를 종이 위에 적어내는 것이 마치 펜의 그림자로, 햇살의 꼭짓점으로 글자를 새겨 넣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따스한 느낌이, 포근한 햇살의 빛깔이 당신에게도 전해졌으면 해서, 그 온기가 편지지 가득 묻어 전해졌으면 해서 오늘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글을 적어요.
내가 나의 연인에게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던 날. 그 날의 설렘과 행복이 당신은 기억이 나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을 당신 앞에 꺼내어 둘 때 내 안에 조금의 두려움도 남겨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백이란 나에게 정말로 행복한 기억이었어요. 그리고 더 행복했던 것은 아마도 당신과 사귀어가며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되고, 당신에게 매일 들려주는 작은 고백들이 더 짙고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마음에 마음을 덧칠해가며,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해 왔네요.
사귐을 시작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왜 내가 우리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당신이 물어봤던 것일까 어쩌다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내가 들려준 대답은 기억이 나요. '표정이 참 다양해서, 표정이 참 풍부해서'. 많은 생각과 많은 이야기,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던 당신의 표정들에 나는 한참을 설레 와서 그런 대답을 들려주었죠.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당신 앞에서, 지금 이 표정은 무슨 생각, 저 표정은 무슨 기분, 그다음 표정은 이런 생각, 이런 기분, 하나씩 맞추어가며 나는 흠뻑 적셔두었던 마음을 당신에게 선을 보였어요.
여전히 나는 그 표정들에 마음을 홀리곤 해서, 미소를 지을 때도 억울한 울상을 지을 때도, 얼굴을 찡그릴 때도 고집을 부릴 때도, 그 안에 담긴 당신이라는 사람이 참 좋고 사랑스럽습니다.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아마 그 당시보다는 더 많은 이유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 거예요. 늦잠을 좋아하는 그 게으름도 좋고, 선이 참 예쁜 목도 좋고, 한복을 입고 선보이는 고운 모습도, 무엇이든 해보려는 호기심도 좋아요. 고집쟁이이면서 때때로 힘껏 고집을 눌러두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주려는 모습도 좋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도, 시무룩해져서 토라진 모습도 사랑스러워요. 미운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당신의 곁에 선 나는 아마도, 당신의 어떤 모습이 예뻐 보인다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여러 모습들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들을 하나씩 찾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될 테고,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어떻게 커 나아가든 당신을 좋아하는 새 이유들을 한가득 찾아두게 되겠죠.
같이 사랑을 한 지가 3년. 우리는 아마도 많이 변했을 거예요. 그리고 많이 변해가겠죠. 그 사이에 나는 군인이 되었고, 당신은 시험공부를 시작했어요. 다른 일상과 다른 삶을 살면서, 다른 기억들 속에 이런저런 일을 겪고서 좀 더 자란 어른이가 되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일을 하고 돈도 벌게 되겠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결혼도 해서 우리만의 집을 장만해 방을 꾸며나가는 날도 올 거예요. 바쁘겠지만 당신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거니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변해도 서로를 사랑하는 날들일 거예요.
요즘 이리저리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지 고민을 하다가 꿈이랄까 소망 하나가 생겼어요. '부디 내게 당신보다 중요한 것이 생기지 않기를'이라는 소망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당신 손 잡아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가 되도록 나를 도와줄래요?
손을 잡고 싶어요. 가볍게 잡는 것도, 깍지를 끼고 꽉 잡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당신의 새끼손가락 하나만을 붙잡고 당신을 따라가보고 싶어요. 왜 그게 그렇게 좋았을까, 이렇게 잡으면 당신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이 사람에게 온전히 나를 맡기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느낌. 항상 아가씨는 내가 당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스스로를 참 못 미더운 사람처럼 여기곤 했지만 나는 줄곧 당신에게 기대어 쉬곤 했어요. 어리광 좀 부려보려고 하면 호기롭게 어리광 대결을 선보이곤 하는 당신이지만, 가끔 보이는 당신의 어른스러움과 허술하지만 열심히 덥혀둔 따스한 품이 나는 그저 좋아서, 열심히 당신에게 안기고 기대는 중이에요. 그저 좋아서.
휴가 때마다 열심히 채워온 사진첩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우리가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찍어온 천사 날개 사진이에요. 벽에 걸려 빛나고 있던 날개 조명. 이제는 그렇게 새롭지도 않은 소품에, 조명에 가려 당신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그 작은 미소가 나는 너무 예뻐서. 그 미소에 담긴 행복이 너무 예뻐서 또 이렇게 웃게 해줘야지 조그맣게 다짐하며 이 사진을 들추어보곤 해요. 우리의 순간순간들을 담은 사진첩. 사진도 잘 안 찍던 내가 당신의 모습을 이렇게 모아 간직하는 것을 보면, 당신은 참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봐요. 이제 겨우 3년, 이 사진첩들이 앞으로 얼마나 두껍고 무거워질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계속 나의 모델이 되어주세요. 당신의 삶을 선물로 만들어 줄게요.
아마도 떨리지 않을까 싶어요. 이 편지를 당신에게 건네러 가는 그 길이. 더 이상 사랑고백에 수줍어하지는 않겠지만, 이 편지를 읽으며 행복해할 당신의 모습에 조금 설레서, 떨릴 것만 같네요. 촉촉한 글 손으로 가득 적어낸 이 짧은 마음을 따라, 내게로 와주세요. 나의 맑은 연인과 함께 좀 걷고, 떠들고, 웃어보려 해요.
추운 날에 당신을 사귀었고, 그렇게 봄을 맞았고. 꽃을 따라 여름을 찾았다가 낙엽 위를 걸어 가을을 지나 또 겨울. 당신이 참 싫어하는 이 추위에 나는 또 하나 따스한 추억을 기워주려 해요. 마음이 따뜻하다고 몸이 따뜻한 것은 아니라는 내 연인이지만, 낭만이 새는 이 바가지에도 이렇게 마음을 쏟다 보니 당신도 어느새 알록달록한 바가지가 되어주더랍니다. 사랑해요. 앞으로도 당신의 곁에 서 행복하게 만들어줄게요.
고마워요, 정말로.
사랑을 담아 지은 글. 2017.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