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한 번째 편지, 공군 서울공항, 2017.01.04
To. 콩 아가씨
편지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문장이 손에 안 잡히는 날이에요. 나름 운을 뗀 편지지 두 장을 던져두고 새 편지지를 꺼내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글이 좀 술술 써지는 것을 보니 이 편지가 가장 솔직한 편지인 것이 아닐까 싶네요. 뭐랄까 지금은 이런 헝클어진 머릿속으로 글을 씁니다.
참 다를 것 없는 새해인데 말이죠. 눈을 감으면 마음속에 항공기 타이어가 보이고, 그렇게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CD의 반을 흘려들을 때까지 잠이 안 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요.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고 일을 하고, 평소와 같은 루틴대로 움직이는데 묘한 답답함에 가슴이 아파요. 시간이 참 빠르고 벅차 계속 놓치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이 지친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이에요.
삶이 지루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번 주에는 처음으로 공군 2호기를 토잉 해보기도 했고, 헬기 토잉 OJT 도 마침내 마쳐서 이제 이 곳에 있는 모든 항공기 OJT를 마쳤죠. 오늘은 마침내 면허가 나와서 단독근무를 시작했고, 내일은 첫 야간비행이 있을 예정이에요.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생기고, 즐거운 일들도, 기념할 일들도 하나둘 늘어가는데 이 속박감은 대체 무엇일까요.
새해의 욕심. 요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밀린 독후감을 쓰고 싶고, 공부도 어찌어찌 시작해보고 싶고, 새해를 기념해 아주 담백하고 뽀얗게 빛이 나는 글 한 편을 적어보고도 싶어요. 오래전 시를 쓰던 날들처럼 시를 써보고도 싶네요. 근데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해낼 수 있을까 없을까의 고민, 할까 말까의 고민. 고민 자체를 싫어하는 나인데 어쩌면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려내거나, 하루 날을 잡고 쉰 후에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보거나 해야겠죠. 욕심을 다루는 법이란 참 어려워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생각이 좀 느슨해진 것 같아 당신에게 문득 고마워져요. 그럴듯한 말로 적은 어리광이라도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네요. 좀 더 힘을 내서 잘 살아봐야겠어요. 다음 편지를 적을 때 즈음에는 조금 나아졌기를 빌며 오늘은 이만 글을 줄일 게요. 사랑해요.
2017.01.04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서울공항은 그 역할로 인해 언론 노출이 많아 일부 근무 내용을 브런치 상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임무나 보안 사항에 대해서는 삭제 혹은 수정을 통해 관리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