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되기로 결심한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소시켰다.
어린이집에 간 아이는
1달간 눈물의 적응기간을 거쳐야 했다.
어린이집 문앞에 서서 듣는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울리면서
꼭 복직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몇 번이나 포기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동안 흘린 아이의 눈물과
문 앞에서 흘린 내 눈물이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지금이 아니더라도
아이는 언젠가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또 적응기간을 거쳐야 한다.
1달 동안 아이가 적응하느라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또 울릴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지금 포기한다면
나에게 후회와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는 싫었다.
"일단 해보고 나서 결정하자."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가야,
엄마가 회사에 가서 일하게 됐어.
우리가 하루종일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엄마는 늘 너를 생각하며 일할 거야.
선생님,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올게!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복직하던 그날,
마음에 드는 청바지를 골라 입었다.
그 위에는 가장 좋아하는 흰티.
청바지 + 흰티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용인 수지에서 서울 종로까지
왕복 2시간 반 넘게 걸리는 출퇴근길.
하지만 먼 길을 출퇴근해야 하는 나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아이였다.
가정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아이는
아침에 등원해서 퇴근 후 데리러갈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친구들이라도 많으면 좋겠는데..
5시 이후부터는 친구 하나 없이
당직선생님과 단 둘이 기다려야 했다.
매일 저녁 7시까지 1명의 아이를 위해
당직교사를 배정해야 하는 어린이집.
어린이집에 눈치가 보였다.
당직 서는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엄마만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해야 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회사부터 종로5가역 6-2 플랫폼까지
전.력.질.주.
헉헉..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종로3가역 도착!
길고 긴 종로3가 환승역을 지나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는 곳은
또다시 6-2 플랫폼.
빠른 환승을 위해
내가 지하철을 타야 하는 곳은
모두 6-2 플랫폼이었다.
너무 숨이 차서일까?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6-2 플랫폼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환승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이에게 가기 위해
나는 매일 6-2 플랫폼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아이의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아서,
나를 찾고 싶어서 선택한 워킹맘의 삶.
이렇게 마음 졸이며
계속 뛰어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평생 뛴 시간과 거리보다 많을듯)
힘들다.
그치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정장 + 구두 조합으로 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구두 신고 뛰는 워킹맘들,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