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할수록 더 아픈 말
아빠랑 단둘이 얘기한 게 언제였더라.
아마 대학 입학 전,
딱히 할 일 없던 수능 이후
아빠 거래처를 따라다니던 때였을 거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났다.
나도, 아빠도 많이 변했고
더 이상 내 마음을 아빠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날은 용기 내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오늘 뭐 해?”
“뭐 하긴, 일하지~ 왜~?”
“아니, 오늘 같이 놀까 해서…”
세상에
분명 예전에 자주 하던 말인데
까먹고 있었다.
“웬일이래? 무슨 일 있어? 아빠 늦게 끝나는데~”
목소리 속엔 어리둥절함과
조금의 신남이 섞여 있었다.
그러지 말지… 좋아하지 말지…
기대할수록 내가 하려는 말은
더 잔인하게 느껴질 텐데
퉁명스러운 내 전화를 늘 반겨주던
아빠가 오늘따라 더 미련해 보인다.
“동생은 데려오지 마. 우리 둘이 놀자.”
“어~ 왜~”
아빠는 우리 집의 박쥐 같은 존재였다.
나한텐 내가 제일 좋다고
동생한텐 동생이 제일 좋다고 하면서도
엄마를 가장 먼저 챙겼던 사람.
특히 동생과 내가 같이 있을 땐
꼭 내 쪽을 보며 윙크를 하곤 말했다.
“동생이 더 좋지~”
그 말이 서운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젠가부터 동생에게 아빠를 양보했다.
그래도 아빠와 둘이 데이트하던 그날들이,
가끔 그리웠다.
오늘만큼은
아빠가 동생을 데려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늘 이후로
아빠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을 테니까.
오늘 혼자 오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파란 이삿짐 박스와 자리를 찾지 못한 가구들 사이
허전한 침대에 몸을 털썩 던졌다.
어제 다 정리못하고 나온 집에 가려고 했지만,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열 수 없는 그 집은
아빠와 얘기한 뒤, 밤에 가서 정리하기로 미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십 번 되뇌고 또 되뇌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의 채도가 낮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