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둥지를 떠났다

지키고 싶은 마음의 괴리

by 별아라

전화가 왔다.

“너, 집 나갔니?”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아빠가 나를 만나기 전에,

내가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먼저 간 것이다.


전날,

새 원룸 계약을 마치고

퇴근한 남자친구에게 부탁해

새벽에 짐을 옮겼다.

마침 동생은 본가에 있어, 집엔 아무도 없었다.

늦은 밤, 망설일 틈도 없이

짐만 챙겨 조용히 빠져나왔다.


내 짐이 비워진 집은

반쪽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가구 사이 숨어 있던 먼지들이 마중 나왔고

미처 챙기지 못한 잡동사니들은

이제야 맡은 바를 다 끝낸 듯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집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했으니

아빠는 어질러진 집보다

비어버린 마음이 더 아팠을까.


어쩌면 텅 빈 그 공간이

아빠 마음과 닮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아빠 앞에 서면, 언제나 나는 어린아이가 됐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는 길, 무작정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아빠 만나러 가는 중인데…

완전 사고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아빠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 얼굴이 굳는 순간, 우리 집엔 금이 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표정을 봤다.


나는 입을 뗄 틈도 없이 쏟아지는 말을 받아내야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도대체 왜 이래?”

“동생은 어쩌고? 너 진짜 연 끊고 살겠다는 거야?”

“어쩐지 조용하다 했더니,

집을 그렇게 해두고 가? 정신 나갔니?”


목소리는 거칠었고, 말들은 날카로웠다.

퍼붓는 말들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 청소하려 했다는 말도,

아빠에게 먼저 연락해 보려 용기 냈다는 말도,

집을 나와야만 했던 이유와

그 공간에 아빠를 남기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진정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럴 바엔,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대화에서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감정이 터지기 전

나는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혹여 따라올까 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원룸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상상했던 시나리오는

단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고,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모든 감정을 아빠에게 떠넘기고 말았다는 것.

이해하는 일은, 아빠의 몫이 되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살기 위해

십여 년을 노력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가 어렵게 지켜온 소중한 둥지를

떠나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나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서로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결국, 우리를 갈라놓았다.


그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괴리였다.


그날의 하늘은 맑은 주황빛이었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장면처럼,

현실 같지 않은 꿈같은 순간이었다.


그날의 감정은 희미해졌고,

장면만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아빠가 기억하고 있는 그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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