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고 싶었고 버틸 수 있는 지금
“언니 어디야”
아빠와 동생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한텐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엄마는 아직 모르나? 동생은 앞으로 어디서 지내려나?
집을 나온 지 일주일.
상담 선생님이 물으셨다.
“저번 주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는데,
오늘은 눈에 생기가 있는 것 같아. 잘 지냈어?
아빠한테는 말씀드렸어? 집 나온 거 후회 안 돼?”
“아빠한테 결국 말은 못 했는데 후회는 안 해요.
이번 주까지 버텼어도 다음 주엔 분명 나왔을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연락을 남기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아직 서로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내 얘기를 전하는 건
결국 나 혼자 죄책감만 덜어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건 내 기준에선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단호한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 회사가 부도났다.
집안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외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아빠는 강남 브런치 카페 지하 창고에서
발렛파킹을 하며 지냈고
엄마는 여주 오일장 상가 가게
2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꽃을 팔았다.
엄마는 툭하면 나와 동생을 집에 두고
밤 11시, 12시가 돼도 오지 않았다.
그럴 땐 무서움에 믿지도 않던 하나님께
엉엉 울며 엄마를 빨리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하나님과 엄마에 대한 분노만 쌓였다.
그다음 해, 엄마가 곧 갈 테니
할머니 집에서 먼저 살라며 나를 보냈다.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4년을 지내다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아빠와는 7년을 떨어져 살았다.
아빠는 제주도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고
우리가 그 뒤를 따라 제주도로 갔다.
가족 모두가 제주도에 간 그 해,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는 6개월 동안 가지 못했고
아빠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던 엄마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불안해진 엄마는
바닥을 구르며 울었고
아빠가 퇴근하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나, 동생, 엄마 셋이 살던 시절엔
내내 방에만 있어서 엄마와 큰 싸움은 없었는데
가족이 다 모이자
나와 엄마 사이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제주도에 온 지 1년.
학교생활도 무난히 보냈고
엄마도 아빠와 같은 회사를 다니며
조금씩 괜찮아지나 싶었다.
그러다 엄마와 크게 싸우고
1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서 아빠가 필요한 말만 전해줬다.
그러다 내가 한 달 동안 아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엄마가 간병하며 다시 대화를 시작하긴 했지만
고3이 되면서
나는 친구 집에 얹혀살거나
밤늦게 집에 들어와 엄마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새벽녘, 준비하다 마주치면
어색한 대화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게 더 좋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으니까.
나는 늘 아빠에게 말했다.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고,
엄마와는 연을 끊을 거라고.
그러나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가까이 지내보자는 엄마아빠의 바람과
집과 차를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제주도에서 대학을 갔고
자취를 시작했다.
본가에는 몇 달에 한 번 들렀고
그 하루조차 엄마와 투닥였지만
큰 갈등 없이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동생과 같이 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와 아빠가 매주 집에 들렀고
결국 나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지 일주일.
바퀴벌레가 세 번이나 나왔다.
라이터만 한 새까만 바퀴벌레.
그때 처음 알았다. 큰 바퀴벌레는 움직일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는 걸.
똥파리에도 벌벌 떠는 나는
남자친구가 올 때까지
바퀴벌레가 혹시라도 나한테 올까
침대 위에 쭈그려 앉아서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게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엉엉 울며 기다렸다.
8월, 9월. 제주도 여름은 숨 막힐 정도로 습했다.
창문은 비 때문에 열 수 없었고,
집안은 어항 속 같았다.
오피스텔에서만 살아봤던 나는
제습기가 필요한 줄도 몰랐다.
동생과 살던 집에서 내 옷들에 곰팡이가 피었을 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며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었다.
그 며칠 사이에
네 벽면과 천장엔 곰팡이가 피고
이불과 옷은 물을 먹어 축축했다.
숨 쉬는 것마저 답답한 밤.
옷은 멀쩡하니 다행인가.
바퀴벌레도, 곰팡이도, 습한 것도 똑같았지만
이번에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물때 가득 낀 어항 속 물고기도
‘아, 숨만 쉬면 되지’하며 살았을까.
나도 이번엔 이 어항이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