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표현의 대물림
나는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한 켤레를 사면 닳아 뒤꿈치가 까져
신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신는다.
절약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익숙해진 신발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집을 나오면서 들고 온 신발이 있는데
그 신발도 슬슬 뒤꿈치가 튀어나와 새 신발을 샀다.
신발을 사면 꼭 하는 루틴이 있다.
이미 묶여 있는 신발끈을 다 풀어
한 땀 한 땀 다시 꿰는 일.
나에겐 번거로운 행위지만
어릴 때부터 아빠가 신발을 사면 해주던 일이라
내게 당연한 루틴이 되었다.
그때 아빠는 아울렛에서 할인된 신발을
세 켤레씩 사주곤
내 발에 맞춰 신발끈을 다시 묶어줬다.
“신발은 일 년만 지나도
새 신발 나오면 가격이 떨어져.
하나 살 가격으로 우린 두 개 세 개 사는 거야.
잠만, 신발끈 다시 묶어줄게.
편해? 너무 예쁘다, 잘 산 것 같다.”
우리 집 형편이 넉넉지 않아 졌다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눈치껏 알게 됐다.
그런데도 나는 유독 신발이 많았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그땐 그게 유난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내가 받은 사랑이란 걸 안다.
나는 이제 스스로 신발끈을 묶지만
여전히 아빠가 묶어주는 것 같다.
아이들과 수업하고 하원을 시킬 때
꼭 하는 루틴이 있다.
잠바 지퍼를 잠그고
팔 매무새와 후드를 정돈하고
꽈배기처럼 꼬인 가방끈을 풀어 곱게 매 준다.
춥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누가 봐도 손길이 한 번 더 닿은 아이로
지퍼를 잠가주려 아이들 눈높이로 쭈그리면
아이들은 코가 닿을 거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여주고
오늘 내가 준 스티커를 자랑하고
이름표에 붙이려 몸을 비틀어댄다.
단순히 귀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다 다른 생김새와 성격, 그 아이를 닮았을 부모.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보물일지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이 뭉클해진다.
부모 눈에는 자식이 평생 아기로 보인다던데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유독 가족에게 무뚝뚝한 내가
애기로 변할 수 있는 순간
아빠한테 신발끈을 묶어달라며
무심히 발 한 짝 아빠 앞으로 내놓는 시간
아빠는 낙엽만 한 내 발이
다 큰 성인의 발이 될 때까지
신발끈을 단단히 묶어줬다.
내가 걷는 모든 순간
아빠의 매듭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줬다.
그 사랑법이 너무 좋아서,
나도 내 아이에게 매일 해주고 싶은 루틴을
마음속으로 계획한다.
아무리 바빠도 머리 정돈하고 나가기
아우터 후드가 뒤집히지 않았는지 살피기
셔츠 깃이 접히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손톱은 늘 청결하게 유지하기
새신을 사면 신발끈을 새로 묶기
스스로를 가꾸는 습관이
부모가 늘 해줬던 사랑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안에는
분명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돌봄과는 달리
드러내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아빠의 작업화 밑창이 떨어져
뒤에 걷던 사람이 주워줬다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을 한바탕 웃게 했지만
그 속엔 단순한 웃음만 있지 않았다.
유쾌하게 넘기는 아빠도, 꺌꺌 웃는 우리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있었다.
아빠의 밑창과 내 단단히 묶인 신발끈은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