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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17. 2021

비싼 돈 내고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찾는 이유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지난달, 결혼기념일을 맞아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강릉을 택한 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과 초록빛 해송이 보이는 호텔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해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주 보이는 창을 가득 채운 벽화 같은 풍경에 우리 부부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베란다에 하루 종일 앉아있기만 해도 좋겠어."



같은 호텔 룸 중에서도 비싼 축에 속하는 바다 전망의 룸을 예약한 건,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와 모래, 파도 소리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이 순간을 기다렸던 건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계속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오랫동안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떠밀려 살아왔다. 대단한 삶의 목표나 의미 따위 없었다. 그렇다고 낙관주의자도 되지 못했다.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아이가 생기며 죽지 못할 이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내 삶을 긍정하지는 못했다.



그런 내게 퓰리처상을 수상한 철학자 윌 듀런트가 쓴 책 '왜 나는 계속 살아야 합니까'(유유출판사)를 만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윌 듀런트는 당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유명인들에게 '계속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묻는 장문의 편지를 써 보냈고, 철학자부터 과학자, 작가, 음악가,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운동선수에 이르는 수많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답장으로 보내왔다.



"삶은 살아가기를 요구합니다. 건강한 유기체에게 무위無爲란, 활동성이 폭발하는 사이사이의 회복 수단이 아닌 이상 고통스럽고 위험하며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무위는 죽음뿐이지요."
- 헨리 맹켄(Henry Louis Mencken), 미국의 평론가



존재 자체가 살아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원초적이며 생물학적인 답변도 있었고,



"지금까지 아무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증명해 보인 사람도 없지요. 아마도 무의미한 것은 삶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질문 자체가 아닐까요."
- 빌햘무르 스텐판손(Vilhjalmur Stefansson), 캐나다의 탐험가이자 인류학자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증명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탐험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은 오롯이 일 자체, 그리고 성취감 입니다. ...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물었지요. 내 생각에 그건 아마도 내 아이들과 손주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거의 광적인 열망일 것입니다."
- 칼 래믈리(Carl Laemmle), 미국의 영화 제작자, 유니버설스튜디오 창립자


"힘차고 아름답게 살아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생의 활력소가 됩니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말없이 보여 주시는 내 부모님 또한 내게 활력을 주는 분들이지요."
- 메리 울리(Mary Emma Woolley), 미국의 교육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



칼 래믈리나 메리 울리처럼 계속 살아갈 이유로 일(성취감)과 가족(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얘기한 유명인들도 적지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유일 것 같다.



당시 지성인들의 일부는 ‘많이 알기' 때문에 불행하다고도 했다. 알면 알수록 생의 환상이 깨어지고 세상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어쩌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생각할 새도 없이 몸을 움직이고, ‘걸으면 해결될’(Sovitur ambulando)질문일지도 모르겠다.



100여 명에 가까운 유명인들의 답변을 읽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스스로에게 만족할만한 답변은 찾지 못하던 찰나.



윌 듀런트는 유명인들의 답변을 모두 소개한 후, 자살하고 싶다며 편지를 써온 한 사람에게 답장을 보내는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내보였는데, 그 긴 답장 중 한 문단에 시선을 빼앗겼다.



"설사 삶의 의미가 일순간 스쳐 가는 아름다움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해도 (뭐가 더 있긴 한지 의문스럽지만요), 그걸로 족합니다. 빗물 속에서 첨벙 대거나 바람과 싸우며 나아가는 시간, 햇빛을 받으며 눈길을 산책하는 시간, 어둠 속으로 스러져 가는 저녁노을을 지켜보는 시간만으로도 삶을 사랑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죽음더러 와 보라고 하세요. 그동안에 나는 사우스다코타의 자줏빛 언덕을, 저녁 하늘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반짝이는 별빛을 보았으니까요. 자연은 나를 파괴하겠지만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자연이 나를 만들고 내 감각을 수천 가지 기쁨으로 타오르게 했으니까요. 자연이 내게서 빼앗아 갈 것은 모두 자연이 내게 준 것이지요."








삶을 사랑하게 만들고, 그래서 살아가게 하는 자연

윌 듀런트가 '삶을 사랑할 이유'를 설명한 문단을 읽다가 문득 나는 내가 언제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다고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따스한 햇볕과 파란 하늘과 바다, 온갖의 초록 빛깔, 빗소리. 나는 자연에서 기쁨과 평화를 얻었구나, 자연이란 나에게 행복  이상의 의미였구나.’



나는 본능적으로 삶을 사랑하기 위해, 그래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연을 찾아 여행을 다녔고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던 것이다.







윌 듀런트는 그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결국 이 모든 조언이 얼마나 헛되고 속물적인 것인지 나 역시 잘 압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요. 하지만 오셔서 나와 한 시간만 함께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에게 숲으로 난 오솔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진 책 속의 모든 논쟁보다도 그쪽이 당신을 만류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테니까요."



당대 최고의 철학자도 결국은 '숲으로  오솔길' 계속 살아갈 이유로 꼽았다.



 듀런트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을 기억해두고, 스스로에게 그런 순간을  많이 선사한다면 삶에 대한 대단한 열망이나 의미가 없더라도 계속 살아갈  있겠다는 확신을 지게 됐다. 과거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 또한 나에겐 큰 위로였다.



우리가 비싼 돈을 들여 멋진 자연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어쩌면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래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일지도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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