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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Dec 16. 2021

아기 엄마가 풍경 사진을 찍는 건 욕심일까

엄마 취미는 사진인데요

풍경 사진 찍으러 여행 다녔습니다

사진 찍으러 여행 다니는 사람. 그게 나였다. 오로지 새로운 피사체를 만나기 위해 출사를 떠나듯 여행을 다녔다.



이 역시 출사에서 찍힌 귀한 사진




여행지에선 풍경 사진을 찍었다.



발을 딛고 서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당장 보고 느끼는 그대로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어쩌면 평생 달성할  없을 욕심을 채우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동시에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존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록이므로, 풍경 사진을 찍는  취향은 어쩌면 지극한 자기애에 기반했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 언덕 ⓒ fotobyesther
파리 어느 지하철역 ⓒ fotobyesther
제주 안돌오름 비밀의 숲 ⓒ fotobyesther




2년 전 아이가 태어났다. 눈에 담기도 아까운 아이를 출산 직후부터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와 외출이 가능해졌을 때에도 여행을 떠나서는 얼마간 카메라로 아이만 찍고 있거나, 그마저도 아이 케어하느라 챙겨둔 카메라를 켜보지도 못했다.



아이를 찍는 게 불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 말고도 렌즈로 한번 더 기억하고 싶었던 풍경이 마음 한켠에만 겨우 남았기에 여행이 끝나고 SD카드를 스캔할 땐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풍경을 찍지 못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으므로.





엄마가 풍경 사진을 찍는 건 욕심일까

어린아이가 있는 여행엔 당연히 많은 제한이 따른다. 맛집이 아니라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아서 가야 하고, 아이가 자다가 떨어져 다치지 않을 잠자리가 있고 놀거리가 있는 숙소에서 자야 하고, 맛있는 커피가 있지만 아이는 입장할 수 없는 노키즈존 카페도 피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은 어찌 견딜 만 한데, 찍고 싶은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다는 건 엄마가 되어도 서운했다. 엄마가 풍경 사진을 찍고 싶다는 건 욕심일까.




"엄마, 안아"봇 아드님과 ⓒ fotobyesther




“엄마, 안아 줘.” 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그래서 나를 살게 하는 구원의 말은 때때로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잠깐 맡겨도 결국 엄마는 아이의 애착인간이라서.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는 사진 찍는 게 더 어려워졌다. 아이는 예쁜 럭비공 같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쁘고 조그맣고 연약한 아이.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는 주변을 찬찬히 보고 느껴야 할 수 있는데. 아이를 챙기느라 렌즈뿐만 아니라 두 눈으로도 주변을 볼 시간은 없었다.





한 손엔 세 살 아기, 한 손엔 카메라

하지만 여행에서 여유를 빼앗겼다고, 사진 찍는 즐거움까지 놓칠 순 없어서. 풍경 한 장 못 찍는 날이 대부분이었어도 부지런히 단렌즈를 장착한 무겁고 까만 내 카메라를 챙겨 다녔다. 매번 여행이 서운한 걸 두고 볼 순 없었으니까.



어느덧 아이는 세 살이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카메라를 드는 게 조금은 익숙해진, 취미가 사진인 엄마는 이제 마치 전쟁 중에 사진을 찍듯 촬영에 임한다.



여행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 손으로 아이를 케어하며 최대한 빠르게 피사체를 찾는다. 아이를 찍을 장소, 풍경을 담을 장소로 나눠 촬영 계획을 세우고, 아이와 함께 움직이다 원하는 스팟에 다다르면 아주 찰나의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방해받지 않고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마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셔터를 누르는 매 순간을 신중하게 결정하게 됐다.



엄마, 엄마 여기 저기! 나를 끊임없이 찾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다가 셔터 한 번.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셔터 한 번. 쫄깃하고 스릴이 넘치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재밌는 건, 분주함과 긴장감 속에서 찍은 찰나의 사진들은 정작 고요하다는 점이다.




아미미술관에서 ⓒ fotobyesther
카페 피어라 ⓒ fotobyesther
유기방가옥 ⓒ fotobyesther



그런 엄마 밑에 그런 아이가 자랐다. 어느새 아이는 휴대폰 카메라를 달라고 해서 풍경을 남기고, 엄마아빠를 자신이 원하는 스팟에 세워 사진을 찍는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사진을 찍던 나를 닮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아미미술관에서 ⓒ fotoby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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