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육아에도 번아웃이 온다

by 별밤

화를 내지 않는 엄마, 남편과 싸우는 아내

남편과 시도 때도 없이 싸운 어느 날, 하도 싸우니 친구들이 도대체 왜 싸우는 거냐 물었다.



나는 종일 짜증내고 우는 아이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등원 준비할 때, 하원하고 저녁 먹을 때, 씻길 때, 재울 때까지. 아이는 화를 낼 대상이 아니고, 그때마다 계속 설명해줘야 겨우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고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배운 덕이었다.



시리얼을 먹던 아이가 우유를 넣어달랬다가 또 빼 달라고 했다가, 빼서 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리얼 그릇 채로 집어던져도 바닥의 잔해를 휴지로 닦아내며 단호하게 설명하고 사과를 받아낼 뿐,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등의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은 건 아니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비논리적인 감정의 흐름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자면 괜찮을 수가 없었다. 분출되지 못한 화가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남편에게 불똥이 튀었다. 남편은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얘기를 듣던 친구가 그랬다. "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구나."






"친구분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 "저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국이나 겨우 끓여 먹이고, 반찬은 다 사서 먹이고... 정 힘들면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 배달해먹고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니까 더, 더 하는 거잖아요."

- "와, 아... 하하하..."


"남편 분이랑 왜 자꾸 싸우는 것 같아요?"

- "저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그 화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종일 누적된 화가 남편과의 관계를 망치는 것 같아요."


"OO씨, 화를 내지 않는 건, AI나 저와 같이 환자와 상담하기 위해 훈련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불가능한 걸 하려고 하셔서 힘드신 거예요."

-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조금씩 힘을 빼보세요. 아이한테 화도 내보고요. 이것도 어려울 거라는 거 알아요. 잘 안돼도 괜찮아요. 그저 지금 본인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만 계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아이도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을 보면서 상황 판단을 한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가 생존의 전부인 유아 시절. 생존 위협을 느낄 만큼 엄마나 아빠가 화를 내면, 아이는 그 상황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배운다고 했다.



"아무 때나 아이에게 화풀이를 해도 괜찮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땐, 엄마 아빠가 화를 내야 뭔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아이도 알게 돼요. 요즘 육아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무조건 화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아이에게도 좋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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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서도 완벽주의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러한 정서적 방관 덕분에 나는 자립심, 책임감, 적응력, 추진력, 생활력을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갖추게 되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탓에 물이 새는 항아리에 끝없이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커버리고 말았다.”

- <다정한 구원>, 임경선



잦은 이사로 계속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좋게 말하면 독립적으로 안 좋게 말하면 방관 속에서 성장한 예민했던 어린 시절. 여러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기 쉬웠던 어린 시절의 나는 겸손을 강요받으며 살았다. 어린아이가 자랄 때 필요한, 하지만 부재했던 또는 거절당한 칭찬과 사랑의 표현. 결국 칭찬이나 좋은 말을 믿지 못하는 어른으로 컸다.



댄서 모니카는 ‘후배들이 밥 먹자고 얘기하는 게 가식이라고 생각해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받아본 적 없는 관심과 칭찬은 가짜의 것이 되고, 그 관심과 칭찬 밑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순한 배경을 그린다. 다른 사람을 통해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기에 대한 확신은 오로지 스스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평생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소 높은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 기준은 때론 너무 가혹해서 번아웃을 겪고 또 겪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남편은 나를 '회사 인간'이라고 놀렸다. '일을 마쳤다'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내가 마음에 드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더, 더' 했다. 그리고 번아웃이 찾아왔다. 누워서 숨 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육아로 또 한 번의 번아웃을 맞이한 것이다. '일도 안 하는데 번아웃이 온다고?' 하지만 정도를 모르고 균형 따위 없이 매사에 최선을 다해 살면 꼭 회사를 다니며 일하지 않아도 번아웃은 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적당히’라는 말을 너무 과소평가하며 살았다. 과거를 탓하고 살기엔 나이가 들어버렸고, 남은 날들이 아깝다. 이제는 힘을 빼고 '적당히'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그리는 완벽한 직업인,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게 한 순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함을 어렵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를 번아웃으로부터, 완벽주의로부터 지켜야 지속적으로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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