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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Oct 03. 2022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육아에도 번아웃이 온다

화를 내지 않는 엄마, 남편과 싸우는 아내

남편과 시도 때도 없이 싸운 어느 날, 하도 싸우니 친구들이 도대체 왜 싸우는 거냐 물었다.



나는 종일 짜증내고 우는 아이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등원 준비할 때, 하원하고 저녁 먹을 때, 씻길 때, 재울 때까지. 아이는 화를 낼 대상이 아니고, 그때마다 계속 설명해줘야 겨우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고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배운 덕이었다. 



시리얼을 먹던 아이가 우유를 넣어달랬다가 또 빼 달라고 했다가, 빼서 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리얼 그릇 채로 집어던져도 바닥의 잔해를 휴지로 닦아내며 단호하게 설명하고 사과를 받아낼 뿐,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등의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은 건 아니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비논리적인 감정의 흐름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자면 괜찮을 수가 없었다. 분출되지 못한 화가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남편에게 불똥이 튀었다. 남편은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얘기를 듣던 친구가 그랬다. "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구나."






"친구분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 "저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국이나 겨우 끓여 먹이고, 반찬은 다 사서 먹이고... 정 힘들면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 배달해먹고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니까 더, 더 하는 거잖아요."

- "와, 아... 하하하..."


"남편 분이랑 왜 자꾸 싸우는 것 같아요?"

- "저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그 화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종일 누적된 화가 남편과의 관계를 망치는 것 같아요."


"OO씨, 화를 내지 않는 건, AI나 저와 같이 환자와 상담하기 위해 훈련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불가능한 걸 하려고 하셔서 힘드신 거예요."

-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조금씩 힘을 빼보세요. 아이한테 화도 내보고요. 이것도 어려울 거라는 거 알아요. 잘 안돼도 괜찮아요. 그저 지금 본인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만 계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아이도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을 보면서 상황 판단을 한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가 생존의 전부인 유아 시절. 생존 위협을 느낄 만큼 엄마나 아빠가 화를 내면, 아이는 그 상황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배운다고 했다. 



"아무 때나 아이에게 화풀이를 해도 괜찮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땐, 엄마 아빠가 화를 내야 뭔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아이도 알게 돼요. 요즘 육아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무조건 화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아이에게도 좋지 않고요."







육아에서도 완벽주의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러한 정서적 방관 덕분에 나는 자립심, 책임감, 적응력, 추진력, 생활력을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갖추게 되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탓에 물이 새는 항아리에 끝없이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커버리고 말았다.” 

- <다정한 구원>, 임경선



잦은 이사로 계속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좋게 말하면 독립적으로 안 좋게 말하면 방관 속에서 성장한 예민했던 어린 시절. 여러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기 쉬웠던 어린 시절의 나는 겸손을 강요받으며 살았다. 어린아이가 자랄 때 필요한, 하지만 부재했던 또는 거절당한 칭찬과 사랑의 표현. 결국 칭찬이나 좋은 말을 믿지 못하는 어른으로 컸다.



댄서 모니카는 ‘후배들이 밥 먹자고 얘기하는 게 가식이라고 생각해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받아본 적 없는 관심과 칭찬은 가짜의 것이 되고, 그 관심과 칭찬 밑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순한 배경을 그린다. 다른 사람을 통해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기에 대한 확신은 오로지 스스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평생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소 높은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 기준은 때론 너무 가혹해서 번아웃을 겪고 또 겪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남편은 나를 '회사 인간'이라고 놀렸다. '일을 마쳤다'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내가 마음에 드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더, 더, 더' 했다. 그리고 번아웃이 찾아왔다. 누워서 숨 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육아로 또 한 번의 번아웃을 맞이한 것이다. '일도 안 하는데 번아웃이 온다고?' 하지만 정도를 모르고 균형 따위 없이 매사에 최선을 다해 살면 꼭 회사를 다니며 일하지 않아도 번아웃은 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적당히’라는 말을 너무 과소평가하며 살았다. 과거를 탓하고 살기엔 나이가 들어버렸고, 남은 날들이 아깝다. 이제는 힘을 빼고 '적당히'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그리는 완벽한 직업인,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게 한 순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함을 어렵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를 번아웃으로부터, 완벽주의로부터 지켜야 지속적으로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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