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 ㅎㅎ
“본인은 나무랑 금속의 기운을 타고나서 먹으로 글을 쓰는 게 맞는 사람이에요”
캘리그래피 공방에 간 첫날,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선 연습을 하고 있는데 대뜸 생년월일을 불러보라고 하셨다. 사주를 좀 볼 줄 아신다며 내 사주를 한 번 훑어보시고 하신 말이 저것이었다. 저 말씀 외의 다른 말씀은 안 하셨고 딱 저 말만 해주셔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공방에는 작년 7월쯤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총 16회, 한 주에 한 번 꼴로 생각해서 4개월 완성 코스를 예상했는데 코로나니 뭐니 해서 여태껏 9개월이 되도록 다니고 있다.(심지어 아직도 4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안 가는 때에도 적어도 하루 2시간 이상씩은 연습하려고 노력해왔고 나름 처음 시작보다 많이 발전했다... 고 생각한다.
혼자 캘리 동영상을 보며 끄적여보았는데 캘리그래피가 나한테 꽤 잘 맞는 것 같았다. 작정하고 등록한 공방 수업이라 처음부터 전문가 과정을 신청했다. 직접 선생님께 배우면서 힐링도 되고 너무 좋다며 체신머리없이 방방 거릴 때도 있었고, 해도 해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칭얼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캘리는 즐겁다 라는 생각이 베이스에 있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선생님의 사주풀이가 맞는 건가? 하며 가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럴 때면 그런 거나 믿고 떠올리는 내가 웃기면서도 참 신통방통한 이야기였다며 혼자 미소 짓곤 했다.
올해부터는 기본 커리큘럼을 마치고 작품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번 상품로고 만들기를 끝내고 이번에는 달력 만들기를 진행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느낌 있는 달력이 만들어져서 뿌듯했다. 이번 달력은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을 테마로 만들어 보았다. 다른 분들은 상큼한 인터넷 감성 문구 잘만 골라 만드시는데 나는 왜 이런 뜬금없는 테마를 잡았는가 (책 자체는 좋은데 갑자기 너무 주제가 무거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며 좌절은 순간도 있었는데 완성된 달력을 보니 너무 괜찮은 거 아닌가! 역시 류시화 시인님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며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우연인지 아닌지 이 달력을 만드는 도중에 지인으로부터 류시화 시인의 또 다른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선물 받았다. 참고로 그 지인과 나는 류시화 시인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전혀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칼 융의 동시성인가! 선물 받은 책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 '만약'은 필연적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법칙을 제외하고는 무엇도 불변하지 않는다고 붓다도 말했다.
p.166
거봐라 ~ 앞으로 나는 나의 글씨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일 수도 있겠다. 어느 날은 마냥 쓰는 게 좋다가도 어느 날은 몇 개월을 연습했는데 왜 선생님 글씨랑 느낌이 이렇게 다르냐며 입이 불쑥 튀어나오게 되는 나란 사람은 참 진득하지 못하다. 붓다가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 않는가. 나의 글씨도 어느 순간 무르익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