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발췌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 12살, 이 문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이 아닐까? 어리기 때문에 데미안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읽고 자발적으로 독후감을 썼을 만큼 이 이야기에 애착을 가졌다. 가슴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혹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네 안에 있다! 와 같은 말은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마음이 떨린 만큼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은 중요한 것이었나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이 경험들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자기 삶의 욕구가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서 쟁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 살면서 내 욕구가 주변 세계와의 갈등에서 이긴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당차게 Yes라고는 못하겠다. 힘을 다해 싸워볼까 했던 적도 있지만 대부분 내 욕구보다 사회의 대세를 따랐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내 욕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고 필요에 따라 타인-주변 혹은 사회-이 원하는 스펙이나 충족시키는 삶을 살았다.
2018년 봄 어느 일요일 한낮, 나는 강남역 토즈-스터디까페-에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재차 확인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직 후 커리어 패스에 고민이 많았기에 뭐라도 해볼 요량으로 헤드헌터에게 상담을 신청했고 그 날은 첫 만남이 있었다. 그녀와 2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지금 다니는 회사와 앞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만남 이후 그녀는 나를 좀 더 알고 싶어 했다. 각종 적성검사결과지와 과거 경력, 좀 더 구체적인 진로 계획서를 가지고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나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검토한 그녀의 소감은 이러했다. “oo 씨는 회사랑 맞지 않는 성향을 가진 것 같아요. 이직을 한다 한들 스트레스는 마찬가지일 수 있어. 한 번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진짜 적성을 찾을지 누가 알겠어?” 그녀는 뭘 하고 싶은지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우린 벌써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한 마디만 더 할게. 넌 그 녀석에게서 벗어나야 해.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 녀석을 때려죽여서라도 말이다. 네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 내가 널 도와줄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 그녀는 자기 멋대로 과격한 제안을 던졌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말처럼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에 쉽게 '그래 볼까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내가 싱글이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부화뇌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 이것저것 상상할 수는 있어.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든가 하는 상상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 소원이 정말 나 자신 안에 충만하게 스며들어 있고, 나의 모든 존재가 그것 하나로 가득 차 있을 때에만 상상하던 것을 실행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실행해 보기 무섭게 잘 될 거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 과연 그럴까? 그래도 괜찮을 걸까?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 지금 알을 깨고 나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는 늘 무엇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했다. 즉, 나에게 가성비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고려대상 1순위였다. 싱클레어는 소설 속에서 데미안을 만나면서 알 껍질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헤드헌터는 나에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것처럼 자아를 찾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자아를 찾고자 하는 나의 열망을 깨워낸 것은 분명했다.
회사는 아직 다니고 있다 -읽고 있는 독자는 허탈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하지만 그녀-헤드헌터-와의 만남 이후로 회사에만 목숨을 걸지 않는다. 2018년부터 나의 의지로 혹은 그녀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명상, 캘리그래피, 글쓰기 등... 보통은 취미로 하는 것이지만 나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것을 찾은 것이다. 비록 서른 중반이 되어가는 나이지만 나다운 인생은 2018년 시작되었고 올해가 나다운 인생에서 두 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을 한다. 여행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여행의 결말 또한 다양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몇 번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의 위기를 맞게 되고 그 위기로 진정한 나에 좀 더 가까워진다. 물론 진정한 나에 가까워지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하지만 말이다. 나의 시도들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분명한 것은 -군중의 이상(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이 나의 이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이 시도들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